글 수: 195    업데이트: 18-04-11 15:50

노거수와사람들

[이정웅의 노거수와 사람들] 담양인 부사 전천상과 하동송림
이정웅 | 조회 355
[이정웅의 노거수와 사람들] 담양인 부사 전천상과 하동송림
바람과 모래로부터 마을 지키려는 목민관의 정신

하동을 여행하면서 느끼는 감정은 소속 공무원들이 자치시대에 걸맞은 행정을 잘 펼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는다. 쌍계사 10리 벚꽃길을 비롯해 녹차산업, 대붕감 등 지역의 식물자원을 활용해 주민의 소득과 지역의 가치를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식물자원인 최치원 선생이 지리산으로 들어가면서 꽂은 지팡이가 자랐다는 푸조나무(경상남도 기념물 제123호)를 보고 ‘하동송림’(천연기념물 제445호)으로 향했다.

입구에는 ‘1745년(영조 21년) 하동부사 전천상공(田天祥公)이 섬진강변의 바람과 모래를 막아 백성들을 잘살게 하기 위하여 광평리 일원에 심었다. 1935년 섬진강교를 준공하고 홍수 방지를 위한 제방공사를 하면서 송림의 일부가 훼손되어 지금은 2만6천52㎡(7천881평)에 620여 그루의 노송과 300여 그루의 작은 소나무가 전국 제일의 인공 숲을 이루었다. 맑고 푸른 섬진강이 감돌아 흐르고, 백사장과 어울려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백사청송(白沙靑松)은 관광명소이자 군민들의 휴식공간이 되고 있다. 거친 모랫바람 앞에서도 굽히지 않는 소나무의 선비 같은 기상을 본받고 백성들을 사랑한 한 목민관의 애민정신을 기리고자 여기 송림의 유래를 적어 알린다’라는 유래비가 서 있다.

260여 년 전 당시 부사였던 전천상이 숲의 여러 가지 기능 중에서 바람에 날려 오는 모래로부터 논밭과 마을을 보호하기 위한 방풍(防風), 방사림(防沙林)으로 조성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의 목적이 아닌 것 같다. 당시 남해안에 자주 출몰했던 왜구로부터 마을이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한 군사적인 측면도 있었던 것 같다.

그동안 많은 공무원이 공직을 수행하면서 청백리로 존경받든지 아니면 선정을 펼쳐 불망비로 후세에 알려지기도 했지만 나무를 심어 오랜 세월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사람은 극히 일부다. 특히 산림공무원으로 젊음을 바쳤던 사람으로서는 그런 공의 행적과 현장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 나아가 선정을 펼치고도 묻혀버린 분을 알리는 일이 임무 같기도 했다.

홍성군은 다른 시군과 달리 홈페이지를 잘 만들었는데 향토문화자료실을 통해 공의 이력을 살펴볼 수 있었다.

본관이 담양으로 아버지는 홍주(지금의 홍성군) 영장이었던 전시원이었다. 공은 넷째 아들로 1705년(숙종 31년)에 태어났으며 호는 죽암(竹菴)으로 경사, 병법, 술수 등에 능했을 뿐만 아니라, 글씨에도 일가견을 가져 어려서부터 천재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음관(蔭官)으로 선전관이 되었다가 1726년 (영조 2년) 22세에 무과에 급제했다. 희천, 수안군수를 역임하고 춘천부사, 하동부사를 지냈으며 나주 영장(營將)으로도 있었다.

천품이 인자하여 가는 곳마다 백성들의 칭송을 받았고 왕도 여러 차례에 걸쳐 공의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고 한다. 1751년(영조 27년) 5월 4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선정을 펼쳤던 공의 공적에 비하면 이력이 너무나 간단했다. 한창 일할 나이에 죽어 타고난 자질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후처 광주 이씨는 시부모를 잘 모셨을 뿐 아니라 공이 병상에 눕자 지극 정성으로 간호하다가 공이 죽은 두 달 후 29세라는 젊은 나이로 따라 죽으니 나라에서 정려를 내렸다고 한다.

얼마 전 KBS TV의 ‘진품명품’ 사상 가장 높은 가격(15억원)이 책정되었던 ‘석천한유도’(石泉閒遊圖)가 시중에 화제를 불러모았다. 그림 속의 주인공이 바로 공의 둘째 형 석천 전일상으로 전라우수사로 있을 때 매사냥을 하고 돌아와 쉬고 있는 모습을 궁중화가 김희겸이 그린 것이다.

하동송림은 공해가 없고 배수가 잘 되는 좋은 토양에 자라 그런지 생육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더 바란다면 빈 공간에 어린나무를 더 심어 다음 세대까지 이어지도록 할 필요가 있다. 하동군민이 오랜 세월 재해로부터 안정된 생활을 해 온 데에는 여러 방책이 시행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田) 부사의 이 방풍림도 크게 기여했을 것이다. 공이 태어난 고장 홍성군과 하동군이 자매(姉妹)결연을 하여 특별한 인연을 기리는 것도 뜻있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대구생명의 숲 운영위원(ljw167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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