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95    업데이트: 18-04-11 15:50

노거수와사람들

[이정웅의 노거수와 사람들] 원진국사와 포항 내연산 보경사 느티나무
이정웅 | 조회 520
[이정웅의 노거수와 사람들] 원진국사와 포항 내연산 보경사 느티나무

자료 부정확하지만 스님이 심은 나무라 믿고 싶어


고려 중기의 이름난 선종 계통의 스님 원진국사(圓眞國師`1172~1221)가 심은 수령 730년의 느티나무가 있다는 기록(보호수지, 1972년, 내무부)을 보고 보경사를 찾았다. 물론 처음은 아니었다. 지금은 다 장성한 아이들이 어릴 때 절 앞 빈터에서 야영한 적도 있고, 겸재 정선(1676~1759)이 청하현감으로 있을 때 그린 그림에 등장하는 소나무 이른 바 ‘겸재송’(謙齋松)을 보기 위해서도 갔었다.

그러나 그때에는 이 자료를 접하지 못했기 때문에 느티나무에 대한 기억은 떠오르지 않았다. 시청에 물어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질문하는 것을 싫어하기도 하지만 일부 공직자들이 그렇듯이 자세히 살펴보지도 아니하고 ‘모른다’고 대답할 때의 허탈감이 클 것 같고, 쉽게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초입의 잘 보존된 노송을 보며 절이 대중을 교화하는 기능도 크지만 숲을 지키는 데도 그 못지않게 기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602년(진평왕 25년) 지명법사가 진나라에서 가져온 팔면보경(八面寶鏡)을 못에 묻고 그 위에 절을 지어 보경사(寶鏡寺)라 한다고 하나 다른 설에는 일조(日照)선사가 589년(진평왕 11년)에 지었다고도 한다. 그 후 고려에 들어와 원진국사가 주지로 오면서 크게 중창했다고 한다.

중창 주 원진국사는 문경 산양현(오늘날 산양면) 사람으로 속성은 신 씨이며 이름은 승형(承逈)이었다고 한다. 세살 때 고아가 되어 숙부 밑에서 자랐으며 13세 때 문경 봉암사에서 선사 동순(洞純)을 은사로 득도하고 이듬해 김제 금산사에서 구족계를 받았다고 한다.

1197년(명종 27년) 스승이 죽자 승과를 포기하고 수도에 정진하였으나, 왕이 그의 뛰어난 명성을 듣고, 특별히 시험을 치르게 했다고 한다. 그 뒤 조계산 수선사(송광사의 옛 이름)의 지눌(知訥) 스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강릉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에게 예배한 뒤 크게 감응을 얻었다고 한다.

청평산(경기도 가평)에서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문신 이자현(李資玄)의 유적을 찾다가 ‘마음의 본바탕을 밝히는 지름길은 능엄경(楞嚴經)이다’라는 ‘문수원기’를 읽고 크게 감명을 받아 수행의 근본 경전으로 삼았다고 한다. 한국 선종이 능엄경을 으뜸으로 삼은 것은 이자현이 문을 열고 원진국사가 다시 천명한 데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1210년(희종 6년)에 연법사 법회의 법주가 되어 선풍을 떨치고, 1213년(강종 2년)에 삼중대사, 1214년(고종 1년)에 선사가 되었고, 이듬해에 대선사가 되어 보경사 주지가 되었다.

1220년(고종 7년)에는 희종(熙宗`재위 1204~1211)의 넷째아들인 경지(鏡智)의 은사가 되었고, 이듬해 팔공산 염불암으로 옮겨 입적했다. 국사로 추증되고 시호는 원진이다.

원진국사비(보물 제252호)와 조상(彫像)과 진영을 모신 원진각, 큰 감나무, 그리고 잘 가꾸어진 소나무, 탱자나무(경상북도 기념물 제11호)는 찾았으나 느티나무는 보이지 않았다.

고목이라 쉽게 눈에 띌 것 같은데 그렇지 않으니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동안 태풍 등 재해로 넘어져 베어버린 것은 아닌지 온갖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남아 있는 그루터기라도 볼 수 있으면 단념할 것인데 그것마저 확인할 수 없으니 답답하기만 했다. 오른편의 뒤쪽을 보니 경내와 다소 떨어진 곳에 큰 느티나무가 보였다. 밖으로 나와 오르니 세 그루의 느티나무가 나란히 서 있었고 맨 먼저 만나는 나무가 가장 컸다. 더 들어가려니 개가 사납게 짖어 포기했다. 원진국사가 심은 나무라는 예감이 들었다. 스님이 절에 온 시기에 비하면 굵기나 키가 크게 떨어지고 또 보호수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안내판도 없었다.

그러나 이런 부정확한 자료에도 불구하고 원진국사가 심은 나무라고 믿고 싶은 것은 보경사를 반석에 올린 스님에 대한 예우일 것 같기 때문이다. 절 뒤 산중턱에 스님의 사리를 모신 승탑(보물 제430호)이 있고, 1317년(충숙왕 4년) 세워진 전남 나주시 불회사에 있는 부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25호)는 조성 연도가 확실해 고려 말 부도양식을 이해하는 데 학술적 가치가 크다고 한다.

대구생명의 숲 운영위원(ljw167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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