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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거수와사람들

[이정웅의 노거수와 사람들] 영월 청령포 관음송 - 2013년 06월 06일 -
아트코리아 | 조회 364

[이정웅의 노거수와 사람들] 영월 청령포 관음송
단종의 한 품고 자란 관음송…어소(御所) 향해 읍하는 자세로

 

단종을 이야기하려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세조다. 어린 조카를 몰아내고 왕좌를 빼앗은 것도 모자라 수많은 충신을 죽이고 왕위
에 올랐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의 과오와 집권의 부당성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있었고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포악한 왕으로 회자되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두 그루의 소나무를 남겼으니 직접적으로는 충북 보은의 정이품송(正二品松`천연기념물 제103호)이고, 간접적으로는 영월의 관음송(觀音松`천연기념물 제349호)이다.

전자는 세조가 요양차 속리산을 찾는 길에 갑자기 내린 소나기로 어가(御駕)를 나무 밑으로 옮기려 하자 가지에 걸려 움직일 수 없을 때, ‘허 가마가 걸렸구나!’ 하자 스스로 가지를 들어 올려 비를 피할 수 있게 되자 정이품(正二品)이라는 높은 벼슬을 주었다는 데서 유래한 나무이다. 후자는 단종이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등되어 청령포에서 유배생활을 할 때 그의 비참한 모습을 지켜본 나무다.

청령포는 겉으로 보기에는 우리나라 어느 지역보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가진 곳이다. 그러나 나룻배 등 특별한 교통수단 없이는 내왕이 불가능한 오지 중의 오지이다. 이런 깊은 산골에 단종을 보내 놓고도 안심이 안 된 세조는 금표비를 세워 소요할 수 있는 거리마저 제한했다. 지존의 자리에서 쫓겨나 울분을 삭이며 시간을 보내야 했던 단종은 노산대(魯山臺)에 올라 할아버지 세종으로부터 귀여움을 받던 추억이며, 두 살 위이지만 오누이같이 정답게 지냈던 왕후 생각으로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을 것이다.

단종의 유배생활을 지켜보고(觀), 그의 울분의 소리(音)를 들었다는 관음송(觀音松)을 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장릉(莊陵`단종의 능`사적 제196호)을 먼저 보는 것이 청령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의견에 따라 장릉에 먼저 들렀다. 사약을 받고 강물에 던져진 시신을 삼족이 멸하는 벌을 받을 수 있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호장 엄흥도가 수습해 비밀리에 묻은 곳을 우여곡절 끝에 찾아낸 곳이라고 한다.

그날따라 관광객이 꽤 많았다. 관람을 마치고 적소(謫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짐을 풀고 자리를 잡으니 사약을 가지고 왔던 왕방연의 시비 앞이었다. 강을 건너니 단종이 머물던 곳으로 정비가 잘 되어 있었다.

관심은 관음송이었다. 가지가 둘로 갈라진 부분에 단종이 걸터앉아 울분과 회한, 외로움으로 몸부림칠 때 그를 지켜주고 위로해주었던 나무다. 특히 주변의 많은 소나무 중에서 담 밖의 한 소나무가 단종의 어소(御所)를 향해 읍하는 자세로 자라는 것도 특이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600여 년이 지난 지금 세조의 순행(巡行)길을 도와주었던 정이품송은 가지가 부러지는 등 수난을 당하는 데 비해 단종의 한을 품고 자라는 관음송은 생육이 왕성하고 전형적인 한국 소나무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단종은 유배생활의 소회를 한 편의 시로 남겼다.

‘천추의 원한을 가슴 깊이 품은 채/ 적막한 영월 땅 황량한 산속에서/ 만고의 외로운 혼이 홀로 헤매는데/ 푸른 숲은 옛 동산에 우거졌구나/ 고개 위의 소나무는 삼계에 늙었고/ 냇물은 돌에 부딪혀 소란도 하다/ 산이 깊어 맹수도 득실거리니/ 저물기 전에 사립문을 닫노라’라고 했다.

어린 나이에 졸지에 왕의 자리를 내 주고 죄인의 신분으로 맹수들이 우글거리는 적막한 오지에서 물소리와 바람소리를 들으며 외롭게 생활하고 있는 자신의 처지를 잘 그리고 있다.

포악한 세조였지만 나무에 고위직의 벼슬을 주는 아량을 보였다. 또 국립수목원을 있게 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립수목원은 한때 광릉(光陵)수목원으로 불렸던 것처럼 세조의 능원(陵園) 일부다.

조선은 능참봉이라는 직제를 둘 만큼 역대 왕들의 묘역을 잘 지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수 있었듯이 광릉이 있었기에 국립수목원이 들어설 수 있었다. 특히 세조는 자기 묘역의 풀 한 포기도 뽑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을 만큼 유택 보전에 애착을 가졌다고 한다.

대구생명의 숲 운영위원(ljw167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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