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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거수와사람들

[이정웅의 노거수와 사람들] 남평 문씨 본리세거지 수백당의 노란 해당화 - 2013년 05월 30일 -
아트코리아 | 조회 374

[이정웅의 노거수와 사람들] 남평 문씨 본리세거지 수백당의 노란 해당화
국내서 보기 귀한 수종…5월 초순에만 꽃 피워

 

옛 사람들의 나무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전통마을이나 종가를 찾아다니는 일은 재미있기는 하지만 쉽지는 않다. 몸이 매여 있어 아무 때나 시간을 낼 수 없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꽃이 피는 나무의 경우 꽃이 절정일 때 보는 것이 가장 좋은데 화무십일홍이라는 말처럼 잠시 피었다가 지기 때문에 시간을 맞추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것은 가까운 곳이거나 먼 곳이거나 마찬가지다. 달성군 화원읍 인흥의 남평 문씨 본리세거지(대구시 민속문화재 제3호)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었다.

인흥은 삼우당 문익점 선생의 18대손 인산재 문경호(文敬鎬`1812~1874)가 1870년경에 개척하여 오늘날까지 일족이 모여 사는 집성촌이다. 배산임수의 전형적인 길지임에도 허한 부분을 나무를 심어 비보(裨補)하고 일찍부터 도시계획 개념을 도입하여 마을을 반듯하게 조성했으며 조선 후기 건축양식의 9가구 70여 채의 살림집과 재사 2곳, 문고 1동이 있는 전통미가 물씬 풍기는 곳이다.

대표적인 건물 수백당은 주로 손님을 맞이하거나 일족의 모임 장소로 이용하는 곳이고, 광거당은 자녀들을 교육시키는 공간이며, 인수문고는 많은 서적을 보관하고 있는 문중도서관이다.

특히 세거지 입구의 수백당(守白堂)은 규모도 크거니와 소나무와 배롱나무, 수석 등을 조화롭게 꾸민 정원이 아름다운 곳이다. 이곳 뒤안에 5월 초순 노란색 꽃이 피는 나무가 있다. 오래 나무와 접해왔고, 천리포 수목원 등 국내 수목원은 안 가본 데가 없다시피 헤매고 다녔는데도 처음 보는 나무였기에 호기심은 더 컸다. 산림청 임업연구원의 ‘한국수목도감, 1992’에 ‘노란 해당화’로 등재되어 있었다.

‘장미과로 지리적으로 중국, 몽골, 터키, 아프가니스탄에 분포하며 우리나라에는 중국으로부터 도입되어 전국의 정원과 사찰에 식재하고 있는 낙엽활엽관목으로 높이 3m 정도 자란다. 토심이 깊고 비옥하며 배수가 잘 되는 적윤(適潤)한 곳에서 번성하고 내한성이 강하여 전국 어디서나 월동이 가능하며 내음성은 약하여 양지에서만 개화가 된다. <중략> 번식은 봄철에 지난해 자란 가지를 삽목하고 여름철에는 당년에 생장한 가지를 이용하여 녹지(綠枝) 삽목으로 증식한다’고 설명해 놓았다.

그러나 해설과 달리 다소 그늘진 이곳에서도 잘 자라고 있다. 이 나무가 귀한 것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나무를 모아 놓은 국립수목원의 보유식물 목록에 없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자세히 살펴보니 여러 개의 줄기가 모여 있었다. 언젠가 양해를 구해 일부를 대구수목원에 옮겨 많은 시민들이 보도록 하고 또 널리 보급하고 싶었다.

그러나 1년 중 꽃 피는 시기가 5월 초순에 한정되고, 다른 일로 바빠 마음먹은 대로 실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난 4월 하순 모 음악회에서 우연히 중곡 문태갑 선생을 뵈올 수 있었다. 서울에서 오랫동안 언론인으로, 공직자로 활동해 오시다가 은퇴한 후 문희갑 전 대구시장과 함께 줄곧 고향 마을을 지키고 있는 분이다.  

별안간 ‘노란 해당화’ 생각이 났다. ‘선생님 수백당의 노란 해당화가 지금쯤 개화할 것 같은데 집에 가시면 확인해 보고 전화 좀 해 주면 좋겠습니다’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 전화가 없었다. 시중에는 해당화가 한창 피고 있어 조바심은 더욱 커졌다. 평소 가깝게 지내고 있는 김상기 님에게 전화를 걸어 직접 가보자고 했다.

아쉽게도 꽃이 지고 있었으나 그런대로 사진은 담을 만했다. 현장을 보고 있는 사이 중곡 선생도 나오셨다. 잊고 있었다고 하며 구한말 대유학자이자 상하이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지원했던 문영박(文永樸`1897~1930) 선생의 아들 5형제 중 맏이 문시채(1897~1964) 씨가 건축을 주관하며 심은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참으로 다행인 것은 집안의 문희목 님이 가지 몇 개를 잘라 꺾꽂이를 했는데 그중 일부가 자라 대를 이을 수 있도록 확보해 놓았다. 명문은 스스로 드러내지 않더라도 나무 한 그루 심고 가꾸는 데서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대구생명의 숲 운영위원(ljw167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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