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95    업데이트: 18-04-11 15:50

노거수와사람들

고 육영수 여사와 영남이공대 전나무
이정웅 | 조회 740

[이정웅의 노거수와 사람들] 고 육영수 여사와 영남이공대 전나무


1972년 식수…박근혜 당선 후 화제

 

영남이공대학교 교정에 있는 전나무 한 그루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영부인 고 육영수 여사가 1972년 4월 12일 심은 것이다.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육 여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인이자 민주화 이후 치러진 역대 대통령선거에서 유일하게 과반 이상을 득표한 박근혜 제18대 대통령 당선인의 어머니이다.

충북 옥천 출신인 육 여사가 대구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50년도 저물어가는 12월 12일이었다. 이날 계산성당에서 한 쌍의 신랑신부가 허억 대구시장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렸으니 신랑은 조국 근대화를 이룩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고 신부는 영부인이 된 육영수 여사였다. 전쟁 중이라 미처 주례를 찾아보지 못해 청첩장만 보고 등단한 허 시장이 ‘신랑 육영수 군과 신부 박정희 양’이라고 불러 폭소를 자아내게 했다고 한다. 당시 신랑은 34세 육군 중령으로 9사단 참모장이었고, 신부는 26세 아리따운 처녀였다.

대구시 삼덕동 1가 5의 2번지(현 쇼핑몰 몰디비 코리아) 셋방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하여 1952년 박근혜 당선인이 태어나고 이내 서울로 올라갔으니 육 여사의 대구생활은 2년 남짓했던 것 같다. 두 분이 처음 만난 곳은 피란지 부산으로 신부의 이종 6촌 오빠이자 신랑의 대구사범학교 1년 후배인 송재천 씨가 중매했다고 한다.

육 여사는 아버지 육종관(陸鍾寬)과 어머니 이경령(李慶齡) 사이에서 1925년 태어났다. 옥천의 죽향국민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유학하여 배화여고를 졸업한 뒤 옥천여자중학교 교사로 근무했다. 1950년 전쟁으로 부산에 피란 중일 때 박정희 전 대통령과 만나 그 해 12월 대구에서 혼인하여 슬하에 1남 2녀를 두었다.

1961년 박정희 장군이 5`16을 주도하여 성공한 뒤 1963년 10`15 선거에서 6대 대통령에 당선되고 연임됨에 따라 대통령 영부인으로 11년간 내조하였다. 만년의 공직은 양지회(陽地會) 명예회장과 자연보존협회 총재였으나, 평소 재야 여론을 수렴하여 대통령에게 건의하기를 계속하는 가운데 ‘청와대 안의 야당’이라는 말도 들으며 남산에 어린이회관을 설립하는가 하면, 서울 구의동 일대에 어린이대공원을 조성하고 정수기술직업훈련원 설립을 비롯하여 재해대책기금 조성과 정신박약아 돕기 운동 등 그늘진 곳을 찾아다니며 사회복지사업에 분망한 일과를 보내었다.

어린이 잡지 ‘어깨동무’ 창간과 서울대 기숙사 정영사를 건립하였다. 경향 각처의 여성회관 건립은 물론 연말마다 고아원, 양로원을 위문하여 따뜻한 구호의 손길을 미쳤고, 전국 77곳의 음성나환자촌까지 일일이 순방하면서 온정을 베풀었다. 1974년 8`15 광복절 기념식이 열린 서울국립극장 단상에서 문세광(文世光)에 저격당하여 서거하시니 향년 49세 한창 일할 나이였다. 박정희 대통령 저격사건에 희생양이 된 격이어서 애도 인파가 청와대에 연일 쇄도하였는데, 국민장 영결식이 8월 19일 오전 10시 각국 조문사절과 내외인사 3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하게 거행되고 이날 오후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묘비는 백일탈상 하루 전인 1974년 11월 21일에 제막되었으며, 이듬해 기념사업회가 발족되어 추모 책자를 펴냈다.(자료: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

대구에는 육 여사가 심은 나무 외에 박 전 대통령과 관련된 또 다른 나무 한 그루가 있으니 대구사범의 후신인 경북대 사범대 부설 중`고등학교 교정 서편의 수양버들이다.

가난한 집안의 막내아들 박 전 대통령이 선택할 수 있는 상급학교는 등록금이 면제되는 대구사범 이외 다른 학교가 없었다. 그러나 지독한 가난으로 기숙사비는 물론 도시락을 싸기조차 어려웠다. 그에게는 점심시간이 가장 괴로웠다. 종이 울리면 기숙사로 달려가 트럼펫을 가지고 밖으로 나와 운동장 서편에 있는 수양버들나무 밑으로 가서 배 고픔을 잊기 위해 나팔을 불었다. 훗날 사람들은 이 수양버들을 ‘박정희나무’라고 했다. 영부인 육 여사가 심은 나무는 표지석을 설치하고 회양목으로 울타리를 쳐서 보호하는 등 대학이 정성스럽게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추억이 깃든 이 나무는 팻말 하나 설치되어 있지 않아 아쉽다.

대구생명의 숲 운영위원(ljw167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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