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95    업데이트: 18-04-11 15:50

노거수와사람들

[이정웅의 노거수와 사람들] 해남 윤씨의 상징 덕음산 비자나무 숲
아트코리아 | 조회 500


남도 해남을 다녀왔다. 가사 문학의 대가 고산 윤선도의 4대조 윤효정(尹孝貞, 1476~1543)이 터를 잡고, 덕음산의 바위가 밖으로 드러나면 가난해진다 하여 이를 숨기기 위해 일부러 조성한 비자나무 숲(천연기념물 제241호)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자료를 정리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칼럼니스트 조용원이 모 일간지에 ‘미술삼가’(美術三家)라는 제목으로 해남 윤씨 집안 이야기를 소개해 그대로 옮겨 본다.

“노론이 200년 장기집권에 들어가기 시작하는 17세기 말엽부터 남인은 춥고 배고픈 야당이 되었다. 남인 중에서도 영남 남인들은 끈 떨어진 신세가 되었다. 춥고 배고팠던 영남 남인들의 정신적 구심점은 도산서원이었다. 퇴계학이 그 굶주림과 외로움을 극복하게 하였다. 사정이 조금 나았던 기호 남인들이 모였던 살롱은 해남의 고산(孤山) 윤선도 저택인 녹우당(綠雨堂)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녹우당은 500년 동안 호남의 알아주는 부잣집이었다. 손님 대접이 후했다. 몇 달 동안의 숙식 제공은 물론이거니와 돌아가는 손님들에게 노잣돈도 두툼하게 지급할 정도로 재력이 있었다. 이 녹우당에서 기호 남인들의 예술혼이 꽃피었다. 재력도 있고 벼슬길은 봉쇄당한 상태이고 재능이 있었던 사람이 갈 길은 예업(藝業)이었던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해남 윤씨 집안에서 배출한 문인화가인 윤두서(1668~1715)와 윤용(1708~1740)은 오늘날 호남을 예향으로 부르게 되는 원인을 제공한 사람들이라고 보아도 큰 무리는 아니다. 남종화의 대가인 허소치도 녹우당의 영향권 내에 있었으므로 허소치의 맥인 목포의 남농미술관과 광주의 의재미술관의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녹우당에 당도하게 되어 있다. 우리나라 집안 가운데서 근래에 녹우당의 미술사적 위치에 필적할 만한 집안이 서울 성북동의 간송(澗松) 전형필 집안이다. …녹우당과 간송 집안 다음으로 미술품 수집에 많은 투자를 한 집안이 삼성가로 알고 있다. 호암 이병철도 고미술품에 특별한 안목이 있었고 그 며느리인 홍라희 대에 이르러 세계적 수준의 미술관인 ‘리움’이 한남동에 들어섰다.”

이 글에서 해남 윤씨들은 호남을 기반으로 하지만 남인(南人)에 속한 집안이며 누대에 걸쳐 적선을 베풀고, 우리나라 미술 발전에 크게 기여한 삼대(三大) 문중의 한 집안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집안을 반석에 올린 분은 윤두서의 증조부 고산 윤선도(1587~1671)이다.

고산은 재임 중 봉림, 인평 두 왕자의 스승으로 활동하면서 관료로서 기반을 닦았으나 노론의 견제에 벼슬을 버리고 낙향했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이끌고 강화도에 다다랐으나 화의를 맺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세상과 등질 결심을 하고 제주도로 향하다가 보길도에 정착하여 여생을 마칠 곳으로 삼았다.

그러나 인조의 부름에 거부해 경상북도 영덕으로 유배되었다가 다음해 풀려났다. 다시 보길도로 돌아가 정자를 짓고 시를 쓰면서 조용히 살았다. 그러나 효종이 즉위하면서 또다시 불렀으나 끝내 나아가지 아니하였다.

1659년(효종 10년) 왕이 죽고 인조의 계비 자의대비의 복제(服制) 문제로 송시열과 맞서다가 함경도 삼수(三水)로 유배되어야 했다. 그 후 유배에서 풀려나 1671년(현종 12년) 85세로 돌아가셨다.

대표작 오우가, 어부사시사 등은 국문학 사상 최고 걸작으로 정철, 박인로와 함께 조선 3대 가사문학가로 평가받고 있다. 이조판서로 추증되고 충헌(忠憲)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늦은 아침 해남 윤씨 종가 사랑채 녹우당(사적 제167호)으로 향했다. 고산과 윤두서의 삶과 예술혼이 배어 있는 곳이다. 해남 윤문의 상징인 덕음산 비자나무 숲은 종가 뒤편에 있다.

당호 녹우(綠雨)는 우거진 비자나무 숲이 바람에 흔들릴 때 쏴 하며 비가 내리는 소리와 같다고 하여 붙였다고 한다. 해남 윤씨들이 명문으로 자리 잡은 것은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후손들의 번성을 기원하는 뜻을 담아 숲을 조성한 선조의 정성과 적덕(積德)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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