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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거수와사람들

[이정웅의 노거수와 사람들] 성녀 헬렌 켈러 여사와 청라언덕의 측백나무 - 2013.12.12
아트코리아 | 조회 1,820

[이정웅의 노거수와 사람들] 성녀 헬렌 켈러 여사와 청라언덕의 측백나무
신명학교를 방문한 여사를 지켜보았을 나무

 


지금도 아이들이 즐겨 읽는 전기물의 하나인지는 알 수 없으나 1960년대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들에게는 필수과목처럼 읽던 전기 중 하나가 ‘헬렌 켈러 여사 전’이었다. 장님, 벙어리, 귀머거리라는 세 가지 고통을 극복하고 저술가, 사회사업가로 성장한 그녀의 초인적인 노력에 대한 깊은 감명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가슴 깊은 곳에 남아 있다. 그런데 ‘대구신택리지’(거리문화시민연대, 2007)를 읽다가 깜짝 놀랐다.

세계적인 인물인 그녀가 동아시아의 조그마한 나라 조선, 그것도 대구 동산의 신명학교에 와서 나라 잃은 슬픔으로 실의에 빠져있던 소녀들에게 ‘미래 코리아의 역사를 어깨에 짊어질 신명의 딸들이여! 꿈을 가져라!(Girl’s Be ambitious!) 하나님이 택한 딸로서 받은 탤런트를 최대한 살려 아름다운 작품이 되라고 역설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지 못한 다수의 시민들은 그녀가 신명학교를 방문했다는 것을 모르고 있을 것이며 이 역사적인 사실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대구시립 ‘근대역사박물관’에는 “그녀는 장애자의 생활환경과 복지 상태를 조사하기 위해 식민지 조선을 방문하였다. 역사적인 대구 방문은 1937년 7월 13일 오전 9시 45분 대구역에 도착하면서 이루어졌다. 당시 언론은 삼중고(三重苦)의 성녀라 칭송하였다. 그녀는 자신을 보기 위해 모여든 군중에게 특유의 은근한 미소를 보이며 일일이 인사를 나누면서 대구공회당에서 역사적인 강연을 하였다. 그녀는 ‘사방에 좋은 산과 향기로운 능금나무가 몰려있는 풍치 좋은 대구에 온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라며 강연을 시작했다. ‘조선부인에 특별히 할 말이 없는가?’라는 기자의 물음에 장애우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관련시설의 확충에 앞장서 달라는 취지의 답변을 했다. 그녀는 역사적인 강연 뒤 서울로 향했다” 라고 했다.

신명학교에서 강연했다는 내용이 전혀 없고, 대구방문 날짜도 차이가 있었다. 근대역사박물관은 시립(市立)인 만큼 개인의 저술인 ‘대구신택리지’의 기록이 잘못될 수도 있을 것 같아 최종적으로 학교 측의 사료로 확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명고등학교에 근무하는 이상호 님을 만나는 행운이 있었다. 이어 하태길 행정실장을 소개받고 ‘신명100년사’(1907~2007, 이하 100년사)와 헬렌 켈러 친필 수기(手記)가 있는 복사본 사진을 얻었다.

‘100년사’에 의하면 그녀가 신명동산을 방문한 것은 1937년 6월 12일 오후로 ‘대구신택리지’와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근대역사박물관은 7월 13일이라 해 한 달이라는 차이가 있다. 이 점은 신명학교의 기록이 더 신빙성이 있을 것 같다. ‘100년사’는 당시의 신명동산 방문 모습을 이렇게 서술했다.‘이날 폴라드 교장 사택 옆의 잔디밭에서 큰 꿈을 안은 전교생 167명이 영롱한 눈빛을 반짝이며 유창한 지화술(수화에서, 한글 자모음이나 알파벳, 숫자 따위를 각각 손가락으로 표시하는 방법)로 조선의 풍토와 조선인의 인정미를 극구 예찬하는 헬렌 켈러 여사의 연설을 들었는데 포리 톰슨 여사가 소리 통역을 하고 방해례(폴라드 교장의 한국식 이름) 선생이 우리 말 통역을 했다.

불과 76년 전의 일이다. 흔히 있는 기념식수의 흔적이 있느냐고 물어 보았더니 없다고 했다. 교정을 살펴보니 교목(校木)으로 지정된 큰 은행나무 이외에는 역사가 오랜 학교가 거의 다 그러하듯 히말라야시더가 주종을 이루고 있었다. 의외로 정문 앞 수형이 반듯하고 수령이 비교적 오래된 -장님인 그녀는 볼 수 없었지만 그녀의 신명동산을 방문하는 모습을 지켜보았을 -측백나무가 있었다. 이 나무를 ‘헬렌 켈러 나무’로 이름 하여 그녀의 자랑스러운 신명동산 방문을 널리 알리고 싶다.

대구생명의 숲 운영위원(ljw167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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