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95    업데이트: 18-04-11 15:50

노거수와사람들

[이정웅의 노거수와 사람들] 경산인 이흥문 선생과 성주 암포리의 제주향나무 - 2013.12.05
아트코리아 | 조회 1,730

[이정웅의 노거수와 사람들] 경산인 이흥문 선생과 성주 암포리의 제주향나무
제주도 떠날 때 가져와 고향에 심은 나무

 


대구 북구 사수동에 조성 중인 한강공원 조성 현장에 갔다가 이동영 님을 만났다. 한강공원은 말 그대로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 한강(寒岡) 정구(鄭逑, 1543~1620) 선생을 기리기 위해 조성하는 공원이다. 한강은 태생이 성주지만 만년에 이곳에 와서 사양정사를 짓고 저술활동과 후학양성에 주력했었다.

이 훌륭한 학자의 유허지가 택지개발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웠다. 칠곡향교, 청주정씨문목공대종회, 주민대책위원회 등의 협조를 받아 대구시에 공원조성을 요청했었고 우여곡절 끝에 마무리되고 있었다.

이동영 님은 한국토지주택공사에 근무했는데 윗대가 한강 제자여서 누구보다 공원 조성에 앞장섰었다. 그 후 몇 차례 만나면서 가까운 사이가 되자 ‘삼익재백천양선생연방집’(三益齋白川兩先生聯芳集)을 보내주겠다고 하여 고맙다는 말과 함께 혹 윗대 중 어느 분이 수식(手植)한 나무가 있으면 알려주면 좋겠다고 했다.

보내준 문집을 보니 대사헌을 지낸 이흥문(李興門, 1380~1451)이 안무사 겸 제주목사(1446~1447)로 있다가 돌아올 때 가져와 심은 향나무가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566년 전이다. 탐라향목(耽羅香木)이라 하여 제주에서 가져온 향나무라는 뜻으로 이름을 붙인 것 같았다.

15세기 험난한 뱃길을 통해 성주까지 와서 온갖 풍상을 이겨내고 6세기를 버텨오며 자라고 있는 나무다. 특히 진기한 보물을 다 놔두고 굳이 나무 한 그루만 가져온 이 목사의 속 깊은 마음이 담겨 있는 이 나무를 하루빨리 보고 싶었다.

공은 본관이 경산(京山)으로 아버지는 양양도호부사를 지낸 이번(李蕃)이고 어머니는 예조판서 김수(金銖)의 따님이다. 1380년(우왕 6년) 경기도 수진방에서 태어났다. 천품이 덕성스럽고, 속된 무리들은 따르지 않았으며, 온화한 성품으로 물질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의리가 분명하여 범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젊은 시절 당대 명사들이었던 경암 허조, 양촌 권근, 매헌 권우 등과 어울렸다.

1417년(태종 17년) 아우 영문(榮門)과 함께 문과에 급제하고 지흥해군사(知興海郡事), 삼군진무(三軍鎭撫) 등을 지내다가 1446년(세종 28년) 안무사 겸 제주목사로 나아갔다.

재임 중 선정을 베풀고 관풍루에 ‘만 마리 살찐 말들은 한가롭게 들에 노닐고/ 천 그루 누렇게 익은 귤들이 교묘하게 가을을 장식하네’라는 시를 남겼다. 이듬해, 임기를 마치고 돌아올 때 향나무를 가지고 와서 고향집에 심었다.

1451년(문종 1년) 대사헌에 이르고 그해 돌아가시니 향년 72세였다. 백인당에 제향 되었다.

향나무는 높이 20m까지 자라는 늘 푸른 바늘잎나무다. 그러나 제주도에서는 사람 키 정도로 낮게 자라며 추자군도에서만 매우 드물게 자생한다고 한다. (출처: 제주식물도감, 1992) 현재 제주특별자치도에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향나무가 없는 것을 보면 당시에도 매우 어렵게 구했을 것으로 생각되는 귀중한 유전자원이다.

지난 10월 27일 이동영 님과 성주 암포리를 찾았다. 대종회장 이대렬 님과 대종손 이태훈 님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향나무는 백인당(경북문화재자료 제287호) 경내에 있었다. 이곳은 소부윤 이함, 양양도호부사 이번, 사헌부 대사헌 공 등 3대를 모시는 추모지소다. 향이 좋아 많은 사람들이 줄기를 떼어가고 가지를 꺾어갔다고 한다. 그러나 높이가 7, 8m 정도에 이르고 수령에 비하여 생육상태가 비교적 양호하다.

하루빨리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호를 서둘러야 할 것 같다. 또한 후계목을 양성해 혹 있을 재난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자랄 때 바닷바람에 익숙했을 나무가 고향을 떠나 소금기라고는 전혀 없는 이곳 내륙 깊은 곳에서 600여 년을 버터 낸 것을 생각하면 경이로울 뿐이다.

공의 묘도비(墓道碑)를 보고 삼익재 이천배, 백천 이천봉, 학가재 이주를 제향하고 있는 덕암서원(경북문화재자료 제286호)으로 향했다.

깨끗하게 유지되고 있어 후손들의 남다른 숭조정신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른쪽 검암산의 솔숲도 좋아 이 역시 천연보호림으로 보호할 만하다. 탐라향목은 심고 가꾸어 온 조선(祖先)의 얼이 깃든 경산 이씨의 보배이기도 하지만 나라의 귀중한 생명문화유산이다.

대구생명의 숲 운영위원(ljw1674@hanmail.net)

덧글 0 개
덧글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