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95    업데이트: 18-04-11 15:50

노거수와사람들

[이정웅의 노거수와 사람들] 가곡 ‘고향생각’과 청라언덕의 현제명 나무
아트코리아 | 조회 1,674

[이정웅의 노거수와 사람들] 가곡 ‘고향생각’과 청라언덕의 현제명 나무
예술 업적 기려 이팝나무에 선생 이름 붙여

 


현제명 선생의 노래비 건립 문제를 두고 논란을 빚고 있는 것을 보면서 남다른 감회를 느꼈다. 당연한 것을 두고 왜 논란이 있어야 하는지? 노래비 설치 장소가  ‘현제명 나무’ 옆이라는 점도 그 하나였다.  

필자는 2003년 24그루의 노거수에 각기 관련된 인물의 이름을 붙였다. 예술가, 스님, 선비, 충신, 왕에 이르기까지 신분도 다양했다.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지방자치단체가 투어 등 답사코스에 자주 소개하였기 때문이다. 사실 10여 년 전 그 때에는 스토리텔링이 일반화되지 않았었다. 일련의 작업은 한 일간지의 ‘토픽’난(欄)에서 힌트를 얻었다.

오래된 노거수가 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베어 없어지는 것이 안타까워하던 중 태국정부가 나무에 스님의 이름을 붙이자 벌목꾼이 손을 대지 않더라고 했다.

그러나 불교가 국교인 태국과 우리의 사정은 달랐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나무와 관련된 인물의 이름을 붙이기로 했다. 현제명 나무도 같은 맥락에서 지정되었다. 특별히 청라언덕의 이팝나무를 선택한 이유는 일대가 당시 계성학교 학생들의 놀이터이자 쉼터라는 점이다.

일제강점기 계성학교 주변의 길은 비만 오면 흙탕물로 범벅이 되었다. 따라서 많은 계성학교 학생들은 질척거리는 큰길 대신 청라언덕의 3`1 만세운동 길로 등하교 했다고 한다. 현제명 학생 역시 예외가 아니었을 것이다. 이 언덕길을 수없이 오가며 큰 이팝나무 밑에 앉아 악상을 다듬었을 것이다

‘고향생각’이나, ‘산들바람’ 등 많은 작품이 한창 감수성이 예민하던 시절 이 이팝나무 아래서 구상했을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은 본관이 연주(延州)로 아호는 현석(玄石)이다. 1902년 대구에서 출생해 제일교회 성가대 활동을 통해 음악에 눈을 뜨고 계성학교, 평양 숭실전문학교를 졸업했다.

졸업 후 잠시 전주신흥학교에서 음악교사를 역임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시카고 건음악학교에서 수학한 뒤 귀국, 연희전문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1930년대에 주도적인 성악가로서 활동하며 자작 가곡과 이탈리아가곡 등을 취입하였다. 1933년에 홍난파와 함께 한국 최초의 작곡발표회를 가졌으며, 작곡집을 발간하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가극 ‘춘향전 , ‘왕자 호동’ 등을 작곡하였다. 1933년에는 조선음악가협회 창설의 주역을 맡았고, 1945년에는 최초의 본격적인 교향악단인 고려교향악단을 조직, 운영했다. 1945년에는 경성음악학교(서울대 음대 전신)를 설립하고, 1953년 음악인들을 규합하여 한국음악가협회를 창립하고 초대 이사장이 되었다. 미국 NBC교향악단의 내한공연 등을 주선하고, 1958년 유네스코국제음악회의 참가 등을 계기로 한국음악의 국제적 진출의 계기를 마련하였으며, 예술원 종신회원이 되었다. 우리나라 음악교육과 창작활동에서 뚜렷한 업적을 남겼다. 김성태`김생려`이유선 등이 선생의 제자들이다. (참고자료`한국학중앙연구원)

몇 년 전 후배 공무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한 시민이 왜 친일파를 현창하느냐며 현제명 나무 안내팻말을 뽑아 없애라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했다. 나는 그분이 나에게 통화하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 역시 친일파를 배격하는 데에는 백번 동감한다. 그러나 일부 시민단체의 친일파를 보는 시각에 의문이 있고,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방해한 것이 아니고 생활 중 어쩔 수 없이 협조했다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같이 활동했던 홍난파는 기념관을 지어 기리고 있는데 비해 대구시민이 너무 인색하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늦었지만 노래비가 세워진다니 반갑다. 그러나 비에 새길 작품이 선생이 직접 작곡, 작사한 ‘고향생각’이 아니고 선생이 곡을 붙이고 이은상이 작사한 노래인 ‘그 집 앞’이라는 점이 아쉽고, 시비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행적과 평가는 제쳐두고 악보만 넣는다고 하니 더욱 안타깝다. 더 바란다면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오페라 ‘춘향전’도 공연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대구생명의 숲 운영위원(ljw167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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