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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거수와사람들

[이정웅의 노거수와 사람들] 우리나라 최고의 원림 담양 소쇄원의 일본철쭉 - 2013.11.07
아트코리아 | 조회 1,501

[이정웅의 노거수와 사람들] 우리나라 최고의 원림 담양 소쇄원의 일본철쭉
세종 때 일본 진상품 기록…입수 경위 불명확

 


남도 담양의 소쇄원(명승 제40호)은 우리나라 최고의 민간 정원이다. 이름 소쇄(瀟灑)는 ‘상쾌하고 맑고 깨끗하다’는 뜻이다. 이는 정자의 주인 양산보(梁山甫)의 아호이기도 하다. 현재 개방된 공간은 4천399㎡(1천331평)로 그리 크지 않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최고의 원림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자연과 인공을 조화롭게 이용한 별서정원이자 지역 사림의 문화와 사교공간으로 활용되었기 때문이다.

소쇄 공은 본관이 제주로 1503년(연산군 9년) 중종 초 종부시 주부(主簿, 종6품)를 지낸 아버지 창암(蒼巖) 양사원(梁泗源)과 어머니 신평 송씨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났다.

15세 되던 해 아버지가 서울의 조광조(1482~1519)에게 데리고 가서 그 문하에 들게 하였다. 이때 선비가 지녀야 할 도학사상과 절의 정신을 배웠다고 한다. 1519년에 시행한 현량과(賢良科)에 추천되었으나 나이가 어려 급제에는 이르지 못하고 기묘사화로 스승인 조광조가 이웃 능주로 유배되자 그를 따라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해 12월 스승인 조광조가 사약을 받고 세상을 뜨자 큰 충격을 받고 자연에 숨어 살기를 결심하고 창암촌 지금의 자리에 소쇄원을 꾸몄다. ‘비 갠 뒤 하늘의 상쾌한 달’이라는 뜻의 중심건물인 제월당(霽月堂)을 지어 그곳에 거처하며 조용히 독서를 하였다.

이어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으로 광풍각(光風閣)을 지었다. 광풍은 ‘비 갠 뒤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이라는 뜻이다. 1530년경에 시작하여 1542년경 공이 40세가 되던 해 완성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애써 만든 소쇄원에서의 생활은 불과 15년여에 그치고 1557년(명종 12년) 3월 55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후손들에게 ‘어느 언덕이나 골짜기를 막론하고 나의 발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으니 이 동산을 남에게 팔거나 양도하지 말고 어리석은 후손에게 물려주지 말 것이며, 후손 어느 한 사람의 소유가 되지 않도록 하라’는 유훈을 남겼다.

정유재란 때 왜적들에 의해 소실된 것을 손자 양천운이 중건하고, 5대손 양경지에 의해 마무리되어 오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나 고암정사 등 일부 시설은 아직도 복구되지 못하고 있다.

5세기 가까운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소쇄원의 모습을 생생하게 알 수 있는 것은 1548년(명종 3년)에 지은 하서 김인후(金麟厚)의 ‘소쇄원 48영’과 1574년(선조 7년) 제봉 고경명의 ‘유서석록’(遊瑞石錄), 1755년(영조 31년)에 제작된 ‘소쇄원도’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김덕진의 ‘소쇄원 사람들, 2007’에 의하면 단풍나무 등 목본류 14종과 창포 등 초본류 15종 모두 29종의 식물이 심어져 있었다고 한다. 또한 이곳에서 키우던 나무를 선물하는 미담도 전해오는데 하서 김인후에게는 일본철쭉을, 송강 정철에게는 대나무를 선물했는데 송강은 이 대나무로 지팡이를 만들어 우계 성혼에게 주었다고 한다.

원내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나무는 일본철쭉이다. 이 나무는 1441년(세종 23년) 일본이 조선에 진상한 것으로 세종이 상림원(上林園, 조선 초기 궁중정원 관리부서)에 맡겨 놓고 일반인에게는 공개하지 않았는데 세종의 처조카인 인재 강희안(양화소록의 저자)이 몇 그루 얻어 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인재는 세종 때 인물이고, 소쇄 공은 중중 때 인물인 것을 감안한다면 입수 경위가 더욱 궁금해진다. 그러나 경위가 어찌 되었던 그 귀한 것이 소쇄원에 심어졌다. 현재 제월당 오른쪽 화계(花階) 위의 일본철쭉이 그때 심은 것이라고 한다.

꽃은 짙은 분홍빛으로 오늘날 조경용으로 심어지는(역시 일본에서 수입된) 영산홍과 비슷하고 5월 초순에 개화한다. 소쇄원은 호남의 유력 인사들이 당시 문란한 시국을 논하고, 때론 풍류를 즐기며, 시문을 짓고, 우의를 다지는 곳이었다.

하서 김인후, 송강 정철, 석천 임억령, 면암정 송순, 고봉 기대승, 서하당 김성원, 옥봉 백광훈, 제봉 고경명 등 호남 사림을 대표하는 지식인이 그들이다.

대구생명의 숲 운영위원(ljw167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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