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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거수와사람들

[이정웅의 노거수와 사람들] 소설가 이태원 선생과 칠곡향교 은행나무 - 2013.10.31
아트코리아 | 조회 2,052

[이정웅의 노거수와 사람들] 소설가 이태원 선생과 칠곡향교 은행나무
소설 ‘객사’에 등장…선생의 비목으로 보존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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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초등학교 동창회는 불과 28세라는 젊은 나이에 동아일보 창간 50주년 기념 장편소설 공모에 ‘객사’가 당선되고, 그 작품이 문단사상 최초로 방송 3사에서 특집으로 방영했다. 이외에도 소설 ‘개국’과 ‘낙동강’이 지역 유력 일간지 매일신문에 연재되었으나 대구문단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소설가 이태원(1942~2008) 선생의 문학비 건립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작가의 문학적 업적을 감안한다면 한국문단이나 대구문단이 나서야 할 일이다. 그런데도 칠곡초등학교 동창회가 주관하고 있는 것은 개교 100주년을 맞은 칠곡초등학교가 많은 인재를 배출했지만 작가의 남다른 고향 사랑이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기 때문이다.

후배 배종찬님은 ‘동문 100년지’에 기고한 글에서 “이태원 선배처럼 고향을 사랑하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선배처럼 고향 ‘칠곡’을 알리려 한 사람은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는 소설 ‘객사’에서 고향에 대한 간절한 향수만이 아닌 고향 사람들의 강직한 성

 

격을 보여주었다”고 했다.

작가는 본관이 경주로 아버지 이재완과 어머니 김해 사람 김복쇠 여사 사이에 8남매 중 장남으로 1942년 칠곡면 읍내동 교동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전매청에 다녀 남부럽지 않게 어린 시절을 보내고 공부도 잘해 늘 1, 2등을 놓치지 않은 우등생이었다고 한다. 이런 선생에 대한 가족들의 기대 또한 컸다고 한다.

경북고등학교에 입학한 작가는 독서광으로 글재주가 뛰어나 고 2때 이미 지방 문학지 단편소설 공모에도 당선되었다고 한다. 그 후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서민들의 밑바닥 생활을 경험하기 위해 잡역부, 장돌뱅이로 떠돌다가 1969년도에는 구로공단에서 노동자로 일하며 그 경험을 바탕으로 수십 편의 습작을 써서 공모전에 응모했으나 번번이 탈락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1970년 동아일보 창간 50주년 기념 공모전에 ‘객사’(客舍)가 당선되면서 화려하게 중앙 문단에 진출했다. 그 후 민주화와 인권 향상에 대한 문인들의 역할을 강조하는 자유실천문인협회에 가입해 고은, 이호철, 이문구, 박태순, 황석영 등 한국문단의 기라성 같은 소설가와 함께 활동을 했다. 그러나 폐암을 극복하지 못하고 2008년 돌아가시니 향년 69세였다. 부인 박숙행 여사와의 사이에 아들 승호, 딸 승미를 두었다.

작품으로 장편 ‘객사’ ‘개국’ ‘낙동강’ ‘0의 행진’ ‘초야’ ‘꿈꾸는 버러지들’ ‘가로등’이 있고 중편 ‘유야무야’ ‘우리들의 봄 춘자’ ‘단양 아리랑’이, 단편으로는 ‘밤길’ ‘졸리고 있는 말’ ‘돌을 던져라’ ‘사명’ ‘하늘이여 땅이여’, 인터넷 연재소설로 ‘우리들의 죽음’ ‘향가’ 등 20여 편이 있다.

출세작 ‘객사’는 전국적인 명성을 얻은 작품이지만 무대는 칠곡향교, 행고마(향교가 있는 마을), 송림사, 한티재, 조피골, 칠곡장, 팔거천, 파계사, 대왕재 학정동, 남창골 등 칠곡 토박이들이면 다 알 수 있는 곳이다.

등장인물도 지체 높은 양반가의 종이었으나 남편이 동학과 독립운동을 하다가 몰락한 마님을 아내로 맞아 향교의 고지기로 어렵게 살아가는 송판돌과 그들 가족들이 가진 자의 학대와 제도의 굴레를 꿋꿋이 이겨내며 살아가는 이야기다.

선생은 작가의 말을 통해 ‘고향은 지금 상전벽해가 사실이라는 듯 몰라보게 달라져 있고, 또 쉼 없이 달라져 가고 있다. 옛날의 산과 들, 개천과 둔덕,  길과 집, 사람의 숨결이 흔적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달라져 가고 사라져 가고 있다. 오죽하면 칠곡이라는 지명도 없어졌다’라고 한탄했다.

소설가 이호철은 자품 ‘객사’를 두고 ‘조선의 일제강점기와 3`1운동의 민족적 대함성을 시대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여타 작품이 다루지 못한 시대상을 시민의식의 찬연한 승리를 통해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차진 문장과 톱니바퀴 같은 구성력, 생생한 인물상 등은 시대를 초월해 오랫동안 읽히기에 모자람이 없다’고 평가했다.

작가가 소설 ‘객사’에서 ‘향교의 은행나무 한 둥치를 벴다가 중병을 얻어 병몰한 큰사위 허 목수’라고 표현했던 칠곡향교 대성전 앞의 은행나무는 아직도 건재하다. 이 나무를 선생을 기리는 비목(碑木)으로 보존했으면 한다.

대구생명의 숲 운영위원(ljw167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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