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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거수와사람들

[이정웅의 노거수와 사람들] 재령인 모은 이오 선생과 함안 고려동학의 자미단 2013.10.17
아트코리아 | 조회 1,721

[이정웅의 노거수와 사람들] 재령인 모은 이오 선생과 함안 고려동학의 자미단
수많은 인재 배출한 재령 이씨의 상징 나무

 


고려가 망하자 일부 지식인들은 개성의 송악산 깊숙한 한곳에 모여 외부와 단절한 채 집단생활을 도모하였으니 후세 사람들은 그들을 일러 ‘두문동 72현’이라고 한다. 그러나 두문동서원지에 따르면 모두 120명이다.

재령인 모은(茅隱) 이오(李午)도 그중 한 분으로 포은 정몽주가 벼슬길에 나아가기를 권하니 ‘때가 아니다’라고 하자 포은은 ‘한 사람의 현사를 잃었다’고 했다고 한다. 공은 판도판서 만은 홍재(洪載), 공조전서 금은 조열(趙悅)과 더불어 낙향했다.

‘함주지’(咸州誌)에 따르면 선생이 함안에 은거하게 된 내력은 다음과 같다.

공이 고려 말기에 응천(凝川`밀양)으로부터 의춘(宜春`의령, 처가가 있는 곳)을 왕래하면서 함안군 모곡에 이르러 무성한 수풀 사이에 자미화(紫微花`배롱나무, 백일홍이라고도 함)가 활짝 핀 것을 보고 사랑스러움에 말을 멈추고 그 아래 천천히 거니다가 마침내 살 곳으로 정했다.

그 후에 맹현, 중현, 상이 모두 공의 후손으로서 조정에 현달하여 자미원(紫薇垣)에 드나들게 되었으니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자미수가 비로소 드러난 조짐이 맞았다고 여겼다.

그 후 100년 동안에 자미수가 말라 죽고 남아 있는 것은 다만 아름드리 되는 둥치뿐인데도 둥치마저 썩어서 남지 않은 것이 거의 30여 년이나 되었는데 지난 병자년(1576) 무렵에는 더부룩한 새싹이 다시 터서 지금은 이미 한 발이 넘고 꽃이 핀 지도 또 5, 6년이나 되었다. 이것 또한 남아 있는 옛 물건이므로 아직도 볼만하다.

‘함주지’는 1587년(조선 선조 20년) 함안군수였던 한강 정구가 편찬한 임진왜란 이전의 가장 오래된 읍지다. 자미원의 원(垣)은 담이 아니라, 임금이 있는 궁궐을 뜻한다.

실제로 손자 맹현은 1460년(세조 6년)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이조참판에, 아우 중현은 1476년(성종 7년) 역시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홍문관 부제학, 맹현의 아들이자 증손자인 상은 1476년(성종 17년)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교리에 올라 임금을 보필했다.

배롱나무가 관아(官衙)를 상징하게 된 것은 당나라 황제 현종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는 양귀비만 사랑했던 것이 아니라 배롱나무도 무척 좋아했다. 조정의 최고 정책기관인 중서, 문하, 성서 3성 중에서 황제의 조칙을 기초하는 중서성의 이름을 자미성(紫薇省)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조선의 조정에도 자미당이 있었다. 조선왕조실록 1454년(단종 2년) 11월 25일 자를 보면 “노산군(단종)이 세종이 임어하시던 자미당(紫薇堂) 창가의 난간을 보고 크게 탄식하기를, ‘세종께서 살아 계시다면 나에 대한 사랑이 어찌 적겠는가?’ 하니, 종자들이 모두 감격하여 울었다. 세조도 이 말을 듣고 슬피 울기를 마지않았으며, 자성 왕비(세조의 비)도 슬피 울었다”고 한다.

원산지가 중국인 배롱나무가 우리나라에 알려진 것은 1254년(고려 고종 41년)에 최자의 시화집 ‘보한집’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선초(鮮初) 시`서`화 3절로 알려진 강희안이 지은 우리나라 최초의 원예교과서 ‘양화소록’에도 ‘중국 조정에서는 중서성 안에 많이 심었기 때문에 옛날 문사들이 시를 짓고 글을 읊었다’고 했다.

그러나 고귀하게 생각했던 것은 아닌지 화목구등품제(花木九等品第)에서 1등의 매화, 국화, 연꽃, 대나무와 달리 6품으로 분류했다. 모은 선생이 배롱나무로 인해 자리 잡은 경남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는 일명 고려동학(高麗洞壑)이라고 한다. 일단의 토지에 구획을 정하여 높은 담을 쌓고 그 안에서 의식주를 자급자족하며 고려 유민으로 조선의 간섭을 받지 않겠다는 오늘날 외국대사관이 누리는 치외법권(治外法權) 지역을 설정했다. 특히, 600여 년 재령 이문이 덕망 있고 학문이 높은 많은 인물이 배출한 것은 자미단(紫薇壇)의 배롱나무의 음덕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이탈리아 메디치가의 문장(紋章)이 월계수(月桂樹)라고 한다면 재령 이씨를 상징은 나무는 자미화(배롱나무)라고 할 수 있다.

대구생명의 숲 운영위원(ljw167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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