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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거수와사람들

[이정웅의 노거수와 사람들] 육영사업가 김울산 여사와 동부교육지원청의 벽오동나무 - 2013년 09월 17일 -
아트코리아 | 조회 1,047

[이정웅의 노거수와 사람들] 육영사업가 김울산 여사와 동부교육지원청의 벽오동나무
복명학교 남산동 시절 교목…‘김울산 나무’로 이름 짓자

 


개화기를 맞아 뜻있는 인사들에 의해 전국적으로 많은 사립학교가 설립되었다. 대구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나 의욕에 비해 자금조달 등 어려움이 많아 오래 유지되지 못했다.

대구의 애국부인회장 서주원 여사가 설립한 명신(明信)학교도 예외가 아니었다. 1909년 대구에 온 순종 황제로부터 받은 하사금 200원으로 개교하였으나 두 해를 겨우 버티고 천도교로 경영권이 넘어갔다. 그 후 몇 차례 경영주가 바뀌었다가 1925년 마침내 김울산 여사가 인수했다.

이 미담은 당시 민족 단합을 표방하던 시대일보(발행인 최남선, 1925년 12월 22일 자)가 다음과 같은 요지로 보도했다.

‘대구의 독지가 김울산 여사가 71세라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명신학교를 인수했다. 남산동 아미산록에 2천 평을 구입하여 3만원으로 건물을 짓고, 매년 3천원을 출연하여 학교를 경영하기로 했다. 이에 서병오 등 대구 유지들이 동상을 세우기로 했다. 김 여사는 학교 이름을 복명여자보통학교로 바꾸고 개교를 준비 중이며 유치원도 설립할 계획이다.’

복명(復明)이란 조국의 광복을 의미하는 뜻이라고 한다. 그 후 복명학교는 남학생 취학인가를 받아 복명보통학교로 이름을 바꾸어 소외되고 가난한 학생들의 배움터가 되었다. 그러나 도시 공동화로 학생이 줄면서 1999년 마침내 남산동 시대를 마감하고 범물동으로 옮겨 오늘에 이른다.

그러나 김울산 여사가 암울했던 시대에 교육의 중요성을 일찍 깨달은 분이라는 이외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다. 1858년(철종 9년) 울산에서 통정대부를 지낸 아버지 김철보(金哲甫)와 어머니 이봉순(李奉順) 사이의 두 딸 중 맏이로 태어났다고 한다. 16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가장이 됐다. 통정대부라면 정3품의 벼슬인바 지체 높은 집안에서 곱게 자랐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어떤 연유였던지 ‘향이’(香伊)라는 이름의 관기(官妓)가 됐다. 푼푼이 모은 돈으로 정미소와 술집을 경영하면서 재력을 키웠다고 한다. 흥선대원군으로부터 상당한 땅을 하사받았다는 설도 있다.

거처는 동산동(구 동산파출소 부근)이었다. 대구 천 주변이라 범람이 잦은 곳이다. 수해를 막기 위해 사재로 둑을 쌓고, 이재민이 생기면 도와주었으며, 흉년이 든 해에는 많은 양의 쌀을 내놓기도 했다고 한다.

대구를 비롯해 현풍, 고령, 하양 등에서 땅을 부치는 소작인들에게도 너그럽게 대해 후한 인심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그러나 자신에게는 극도로 인색해 문풍지가 찢어지면 헌 종이로 때워 바르고, 빗자루도 몽당비가 될 때까지 사용했다고 전한다. 대구시가 시가지 개발을 위해 도로를 개설할 때에도 편입된 많은 땅을 희사하는 등 사회사업에 헌신했다.

1936년 여사의 청동 좌상이 복명학교에 세워졌으나 2차 세계대전 당시 일제가 공출해 가고 대신 돌로 작은 흉상을 만든 것이 현재 범물동 신 교사에 있다.

1944년 그토록 바라던 조국의 해방은 보지 못하고 87세를 일기로 가장 천하게 여겼던 기생으로 출발해 가장 존경받는 육영사업가로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감했다.

북구 조야동에는 당시 여사의 전답을 소작하던 농민들이 고마움을 잊지 않으려고 세운 송덕비가 있다. 자신의 이름을 바꿀 만큼 깊은 애정을 가졌고, 그토록 하고 싶어 하던 인재양성을 위해 거금을 투자했던 옛 복명학교(현 동부교육지원청)에서 여사를 추모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당시 교목(校木)이었던 벽오동나무밖에 없다. 이 나무에 ‘육영사업가 김울산 여사나무’라고 명명하고 표석이라도 하나 설치해 기렸으면 한다.

벽오동나무는 상서로운 새, 봉황이 깃든다는 나무다. 그러나 현재 범물동으로 이전한 학교에서는 교목을 느티나무로 하여 설립 당시의 전통이 단절된 것 같아 아쉽다.

 

대구생명의 숲 운영위원(ljw1674@hanmail.net)

- 2013년 09월 1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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