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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거수와사람들

[이정웅의 노거수와 사람들] 주민의 의지로 살려낸 청도 성곡리 당산나무 - 2013년 08월 15일 -
아트코리아 | 조회 406

[이정웅의 노거수와 사람들] 주민의 의지로 살려낸 청도 성곡리 당산나무


마을공동체 정신적 지주, 300년 된 할배신

 


한적하기 그지없는 오지마을 청도군 풍각면 성곡리가 뜨고 있다. 성곡댐 건설로 문전옥답이 수몰되어 생활기반을 잃고, 240여 명의 삶의 터전인 81가구가 물에 잠기는 큰 변화를 겪은 데 비하면 빨리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타지로 떠나고 현재 이곳에 다시 보금자리를 잡은 사람은 23가구 45명뿐이다. 이들이 비교적 빠른 기간에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은 댐건설을 시작할 때부터 사업이 종료될 때까지 보상과 이주대책 등 고향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한 마을 지도자들이 있었고, 이른바 스타 마케팅이라 하여 이름 난 개그맨 전유성을 아무런 연고가 없는 이곳에 정착시켜 개그학교와 개그공연장을 운영하여 많은 관광객을 유치한 결과이다.

또한 960여 기의 고분 중 360기를 발굴하는 등 고대 이서국(伊西國)의 후예라는 자부심이 큰 동력이 되었고, 특히 성곡 1리를 지켜주던 300여 년 된 할배신인 당산나무와 할매신인 돌탑을 옮겨 보존할 만큼 공동체정신으로 똘똘 뭉쳤기 때문이다.

가장 많은 가구가 수몰된 성곡1리도 다른 마을과 같이 매년 마을의 안녕과 풍년농사를 기원하는 당제를 올렸다. 그러나 여느 마을과 다른 점은 당산 한 곳만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할배신과 할매신을 함께 숭배한다는 점이다. 당산나무를 할배신으로, 높이 1m정도 돌탑을 할매신으로 모셨다. 당제는 음력 정월 초사흘 자정에 올린다.

꽹과리, 북 등을 치면서 사람을 모아 흥을 돋우고, 대나무로 막대기를 만들어 이것을 잡은 사람, 즉 대잡이가 이끄는 곳으로 발길을 옮겨 제관과 축관을 뽑는다. 제관이 선정되면 그 제관은 할배신과 할매신 주변에 왼손으로 꼰 새끼줄로 금줄을 치고 황토를 뿌려 신성한 공간임을 표시하여 사람들의 접근을 막는다.  

제수는 돼지고기, 백설기, 조기, 마른 명태, 밤, 대추, 사과 등이며 비용은 마을 공동경비에서 지출한다.

밤 11시 준비한 제수를 당산나무 밑으로 옮기고 제관과 축관은 한복에 유건을 쓴다. 자정이 되면 비로소 제가 올려지는데 할매신을 먼저 찾아가서 ‘여기(할배신)로 오시오’ 하면서 당산나무 옆으로 모신다.  

제가 진행되는 동안 마을 사람들은 함부로 돌아다니지 못하며 개 짖는 것도 단속한다. 먼저 술을 조금 부어 나무 주위에 뿌린 다음 잔을 가득 채워 제사상에 올린다.

축문을 읽고 제를 올린 다음 마을에 거주하는 아홉 성씨를 적은 소지에 ‘ㅇ씨 집안 축원합니다. 1년 동안 평안하게 해 주십시오’라고 부르면서 태운다.

다음 날 아침 주민들은 마을회관에 모여 제사 음식으로 음복을 하며 마을의 대소사를 의논한다. 이로써 당산제가 마무리된다.

마을공동체의 정신적 지주였던 이 당산나무와 돌탑은 현재 성곡댐 상류에 인공 섬을 만들어 옮겨 놓았다. 나무가 너무 커서 옮기기가 어렵고, 설령 힘들게 옮겼다 해도 살 것인지도 불확실해 베어버리려고 했던 데 비해 활착 상태가 좋다. 다만 섬이라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점이 아쉽다.

주민들은 수몰로 농사 지을 땅이 없다. 따라서 농외소득을 올리기 위해 ‘호반 위에 자연이 살아 숨 쉬는 성곡’을 목표로 ‘사과따기행사’ ‘복사꽃축제’ 등을 기획해 성과를 거두었고, 특히, 2011년 전국 최초로 개장한 개그전용 웃음건강센터(일명 철가방극장)는 1천200여 회 공연에 유료 입장객만 1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마을 지킴이 박성기 위원장에 의하면 농산물판매장은 물론 농촌체험을 테마로 ‘자연문화학교’를 개설해 자연미술과, 자연음악과, 자연농민과, 자연푸드과를 운영하고 있다.

이외에도 도시민을 위해 댐을 일주하는 몰래길 등 각종체험이 연중 가능하고 사회적기업을 통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찾는 분들이 많다고 한다.

이런 가시적인 성과 덕분인지 주민들의 아픈 상처도 조금씩 아물어 가고 있다고 한다.

 

대구생명의 숲 운영위원(ljw1674@hanmail.net)

- 2013년 08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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