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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거수와사람들

[이정웅의 노거수와 사람들] 경주인 추사 김정희 선생과 예산 용궁리 백송 - 2013년 08월 08일 -
아트코리아 | 조회 760

[이정웅의 노거수와 사람들] 경주인 추사 김정희 선생과 예산 용궁리 백송


중국서 씨 가져와 심어…수령 200년 천연기념물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선생을 만나러 가는 길은 결코 수월하지 않았다. 대구에서 대전행 고속버스를 타고 동부터미널에 내려 다시 예산행으로 갈아타고 거기서도 택시를 이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비용도 그렇지만 시간만도 4, 5시간. 터미널에서 기다리는 시간까지 합치면 5, 6시간(왕복 10~12시간)이 소요되는 거리다.

서예나 금석학을 공부하는 것도 아닌 사람이 먼 길을 마다하지 않는 것은 1809년(순조 9년) 선생의 나이 24세 때 아버지 김노경이 사신으로 갈 때 따라갔다가 북경에서 씨를 가져와 심은 수령 200여 년의 백송(천연기념물 제106호)을 보기 위해서이고, 다음은 추사가 팔공산 동화사를 찾았을 때 정조가 스님으로 조선 제일의 문장가라고 격찬했던 인악(仁嶽, 속명 이의첨, 1746~1796) 대사를 추모하는 한 편의 시를 남겨 비록 방계후손이지만 흠모의 정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님의 오심은 한가로운 구름 무심히 피어남/ 스님의 가심은 외로운 학 한 마리 긴 울음

<중략>

어찌 칠분(七分)이나 닮았으랴./ 아득한 저 허공너머에서 마음으로 깨닫고 정신으로 만나리라.

백송(白松)은 수피가 희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중국 북부지역이 원산지이고, 자연 상태에서 발아(發芽)가 어려우며, 잎이 3개인 점이 여느 소나무와 다르다. 최근 조경용으로 양묘한 것을 제외하면 우리나라 백송 노거수는 거의 모두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추사는 1786년(정조 10년) 아버지 유당 김노경(金魯敬)과 어머니 기계 유씨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났으나 큰 아버지 노영(魯永)의 양자로 입적하였다.

증조부 한신(漢藎, 1720~1758)은 영조의 둘째 딸 화순옹주와 혼인하여 월성위(月城尉)에 봉해지고, 제용감 제조(각종 직물 따위를 진상하고 하사하는 일이나 채색이나 염색, 직조하는 일을 맡아보던 관아의 수장 정3품)를 역임하다가 38세라는 젊은 나이에 운명했다. 이에 아내 화순옹주가 식음을 전폐하고 남편의 뒤를 따르려하자 영조가 만류하였으나 결국 남편의 뒤를 따랐다.

훗날 정조가 정려를 내렸다. 할아버지 정헌공(靖憲公) 김이주(?~1797)는 대사헌, 대사간과 병조판서를 지냈고, 아버지 김노경(1766~1840)은 대과에 급제 이`예`공`형`병조판서는 물론 지돈녕부사를 지냈으며 글씨를 잘 써서 아들 추사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훌륭한 가문에 태어난 추사는 일찍부터 글씨를 잘 써서 6살 때 그의 입춘첩을 본 박제가(朴齊家, 1750~1805)의 눈에 띄어 그의 제자가 되었다. 1819년(순조 19년) 대과에 급제하여 성균관 대사성 등 순조로운 관직생활을 영위했다. 그러나 권력다툼이 전개되는 과정에 화가 미쳐 1840년(헌종 6년) 제주도로 유배되어 위리안치 되는 불행을 겪는다. 명문가의 후예로 승승장구하던 그에게는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1848년(헌종 14년)까지 무려 9년 동안 제주도의 매운 바닷바람을 맞아야 했다. 그러나 정작 힘들었던 것은 이런 거친 환경보다 지인들의 배신감이었을 것이다.

이 시기에 추사체라는 독창적인 필법을 완성하고 ‘세한도’(국보 제180호)라는 걸작을 탄생시켰다. 유배생활에서 풀려난 3년 후인 1851년(철종 2년) 이번에는 영의정이었던 친구 권돈인의 일에 연루되어 함경도 북청에 유배되었다가 2년 만에 돌아왔다.

그러나 세상은 바뀌어 안동 김씨가 득세하면서 다시 정계에 복귀하지 못하고 아버지의 묘소가 있는 과천에 은거하면서 학문에 몰두하다가 1856년(철종 7년) 71세로 생을 마감했다. 용궁리 묘소는 명성에 비하면 너무나 간소했고, 기념관도 잘 꾸며져 있었다. 먼 길을 갔었지만 선생이 뛰놀던 공간과 혼이 흐르는 백송(白松)을 만날 수 있어 기뻤다.

 

대구생명의 숲 운영위원(ljw1674@hanmail.net)

 

- 2013년 08월 0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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