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6    업데이트: 20-07-08 13:29

언론&평론

[김수영의 그림편지] 이정애 작 ‘길 위에 서서’
관리자 | 조회 1,232
헤아릴 수 없는 작은 선들로 반짝거림 가득한 달항아리…꽉찬 소망 기원



조선의 백자는 세계인들이 찬탄을 해온 도자기입니다. 이 백자 중에 특히 사랑을 받는 것은 백자대호. 흔히 달항아리라 불리는 것이지요. 달항아리는 순백색의 태토 위에 투명한 유약을 씌워서 번조한 자기항아리로, 생긴 모양이 달덩이처럼 둥그렇고 넉넉하다고 하여 달항아리로 불려왔습니다. 

우리 민족은 달, 특히 둥그런 보름달을 좋아했습니다. 달을 신비하고 영험한 존재로 여겨 보름달이 뜨면 소원을 빌기도 했습니다. 달에 대한 사랑이 큰 나머지 달을 닮은 백자를 만들어 집에 두기도 했는데 바로 달항아리 입니다. 달을 보며 소원을 빌기도 하고 혼탁한 정신을 정화시키기도 했습니다.

투명한 백자유를 사용해 맑은 우윳빛이 나며 부분적으로 빙렬이 나 있는 달항아리는 은은한 아름다움이 큰 특징입니다. 첫눈에 마음을 사로잡는 화려함이나 강렬함은 없지만 볼수록 가슴에 무언가를 조심스레 남겨놓는 은근한 매력이 있지요. 이처럼 담백한 멋을 주는 달항아리에 익숙해있던 기자에게 이정애 화가의 달항아리는 꽤 파격적이었습니다. 그래서 한 번 봤는데도 기억 속에서 사라지질 않았습니다. 

누구에게나 친근감, 평온함, 넉넉함을 불러일으켜서인지 달항아리를 그리는 화가는 꽤 많습니다. 달항아리 고유의 특징을 잘 살리면서 그들만의 색깔을 담아내는 달항아리들이 그림으로, 조각으로 재탄생되었습니다. 꽤많은 달항아리 작품을 봐왔던 기자가 몇년 전 처음 본 이 작가의 달항아리 연작 ‘길 위에 서서’는 기존의 달항아리에 대한 관념을 깨는 작업이기에 내심 놀라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은은함이 특징인 달항아리의 표면에 반짝임이 가득했고 달항아리를 받쳐주고 있는 배경마저도 반짝임이 점령을 해버렸습니다. 너무 화려해서, 기존의 달항아리의 이미지가 아니어서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지요. 이 작가는 8~9년 전부터 이 연작을 그리고 있는데 초창기에는 부정적 시각도 많았다고 합니다. 회화에 반짝이는 물감(글리터젤)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데 일반 그림도 아닌 달항아리 그림에 반짝이는 물감을 사용하니 이에 대해 말이 많을 수밖에 없었지요. 그리고 이런 형태의 그림을 그만두라는 쓴소리를 듣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 작업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이 작업을 하면서 자신이 먼저 행복했기 때문입니다.

“그림을 그리다가 10여년 전부터는 도예도 병행했지요. 도자기를 워낙 좋아해서 시작했는데 그림과 도예를 병행하기에는 경제적으로 쉽지가 않더군요. 그래서 도자기를 그림으로 그리자는 생각에 이르렀지요.”

사실 세상에는 좋은 그림이 참 많습니다. 이 같은 사실을 이 작가도 너무나 잘 알고 있지요. 그래서 그냥 소박한 심정 하나, ‘내 그림 앞에 잠시라도 서 있도록 하자’는 목적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도자기 그림에 반짝이는 물감을 사용했습니다.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호기심을 이끌어내자고 시도했는데 그 과정에서 제가 너무 재미를 느꼈습니다. 저는 작업하는데 있어 선을 좋아합니다. 이 작업 이전에 풍경화를 그렸는데 그때도 힘있는 선의 표현에 중점을 두었지요. 이런 선작업을 달항아리 작업에서 제대로 해낼 수 있었습니다.”

멀리서 보면 그저 달항아리와 배경이 반짝거림의 물결로 가득찬 듯 하지만 그의 그림을 가까이에서 보면 사람들은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수도 헤아릴 수 없는 작은 선들이 모여서 그렇게 큰 항아리를 만들고 그 항아리를 감싸는 배경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글리터젤을 간혹 포인트로 사용하는 작가는 있었으나 전면에 사용하는 예는 잘 없었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호불호가 분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작업에 대한 여러 말들이 있었지만 그는 타인의 평가에 개의치 않았고 이 작업을 고수했습니다. 그의 고집스러움은 최근 인정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작품 마니아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작업은 시간과의 싸움입니다. 노동집약적 작업이다보니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작업에만 매달려 있어야 합니다. 다행히 10시간 이상의 작업을 해도 몸이 아프지 않으니 이 작업을 해야만 할 운명인가 봅니다.”

그는 작업하는 시간을 기도하는 시간, 꿈꾸는 시간이라 했습니다. 작업을 하면서 자신의 소망을 달항아리에 담아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꽉찬 그의 소망을, 그리고 소망이 이뤄질 가능성을 뚜렷하게 보는 것 같아 기분이 절로 좋아집니다. 주말섹션부장 sykim@yeongnam.com

#이정애 화가는 대구, 서울, 일본 등에서 29차례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270여회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전업미술가협회 대구지회 부회장, 한국미술협회 회원, 대구미술협회 회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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