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3    업데이트: 22-09-25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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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속에 돋보이는 탄탄한 묘사력과 구성력 - 부산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 교수 김해성
아트코리아 | 조회 924

작품 속에 돋보이는 탄탄한 묘사력과 구성력

- 이현희 작품전에 부쳐-
 

사진보다 더 리얼하게 그려내는 포토리얼리즘의 화가 에스티스는 아래와 같은 겸손한 푸념을 한 적이 있다.
- 나는 뉴욕거리를 보이는 대로 그릴 수가 없다. 분명 나의 기술적 숙련도의 부족 탓이다. 심지어 사진을 찍어봐도 그것이 실제처럼 보이지 않는 것은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다.
에스티스의 이러한 푸념은 실제 그의 기술적 숙련도가 모자라서가 아니라 아무리 사진처럼 치밀하게 묘사할지라도 자신의 그림은 물론 사진조차 실제와는 언제나 거리가 멀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러나 실제와는 거리가 먼 것이 흥미로운 일이다라고 말한 거기에 그림의 참뜻이 있다.

존재하는 우리의 주변 모든 사물은 그 자체로서 그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실주의 화가들은 이러한 사물을 그림보다 더 정확하게 찍어내는 사진이 발명된 이후 자연의 모방이라는 그림의 중요한 역할을 빼앗기기라도 한 듯 자연을 그대로 그리는 사실 자체에 회의를 느끼게 된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사진에 이어 영상미술이 일반화된 오늘에 이르러서는 화가는 감동적인 이야기 대신에 사물 자체와 그 보이는 그대로의 형상이 스스로를 표상 해야 한다고 선언했던 사실주의의 선구자 쿠르베의 말조차 무색해져서 화가의 필수적인 묘사력마저 오늘날 거의 경시되고 있는 현상이다. 그러나 이런 현상에서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전통적인 사실주의를 추구하던 화가들은 사물 대신 사진으로 인해 실제 현장과는 다른 사진 속의 사물을 그려내는 일에 몰두하게 된다. 사진을 그대로 그리기 보다 자연 대신 사진을 빌미로 해서 새로운 묘사를 시도할 수 있는 이점도 생각하게 된 것이 포토 리얼리즘이기도 하다.
아무튼 보이는 것을 객관적으로 묘사해내는데 익숙한 사실주의 화가들은 대개가 환상이나 상상과는 거리가 먼 평범하고 일상적인 있는 그대로의 소재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래서 그 누군가 사실주의 화가들은 소재에 관한 한 거의 모든 것을 취할 수 있는 이점이 있기에 한 때 ‘무엇이나 먹어치우는 괴물’이라는 별칭까지 얻게 된다. 실상인즉 사실주의 화가들은 그런 점에서 보이는 그대로의 사물을 상세하게 많이 그려 화면을 꽉 채워 그리기를 즐겨한다.
 
치밀한 관찰력, 탄탄한 소묘력을 학부시절부터 터득하고 있었던 이현희는 이런 점에서 묘사를 터부시하고 기본적인 그리기조차 경시하고 있는 오늘날 미술계의 현실에서 손으로 그려내는 자신의 소묘력을 꾸준하게 닦아온 사실주의적 범주의 화가이다. 설치미술이나 디지털 아트 등등으로 창의성 내지 이색적인 소재나 기법으로 일관해서 구상미술이나 사실적 경향의 미술이 과거의 카테고리에 갇혀버린 듯한 오늘의 현실에서 이현희야말로 잃어버리고 있는 탄탄한 소묘력에 바탕을 둔 그리기의 손질작업의 복원을 끈질기게 고집하고 있다. 이러한 손질작업에서 이루어진 객관적 기록에서 본다면 그의 그림은 실증적인 면이 돋보이는 만큼 자신의 감정 표현은 역으로 매우 억제되어있는 듯 보여진다.
10년간의 미술교직생활, 그리고 뒤이은 10년간의 가정생활 속에서도 해마다 빠짐없이 사실 계열의 공모전에 참여해서 입상해온 그의 경력에서 엿볼 수 있듯이 이현희 자신의 작업활동은 미술계와 거리를 둔 지점에서 외로운 홀로서기에 매진해 왔다고 할 수가 있다. 그래선지 그가 선택한 소재 또한 그가 살아온 실제적 삶 주변에서 떠나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자신 그러한 평범한 일상의 객관적 면모를 통해서 선택한 인물이나 사물 자체에 내재한 질서를 그림으로 일구어냄으로써 그가 실제적으로 그려낸 형상을 통해서 완벽한 감각을 실현하기에 몰두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회상’ 시리즈로 명명된 옹기 그림과 자신의 노부모를 모델로 한 가족 그림, 그리고 풍경적 소재로 잡은 흙담 그림 등은 의고성이 짙은 정적인 소재로서 이현희는 정이 어린 이런 대상을 투박한 붓질이나 은근한 질감으로 표현하기 보다 소재가 되는 사물의 실증적 묘사를 앞세워 그려진 인물과 소도구 자체가 표상하는 감각을 느낌으로 대처하고 있다. 이와는 대조되는 현대적 일상을 그린 스튜디오 시리즈와 아파트 실내공간 속의 인물 그림 또한 모델이 되고 있는 그 자신의 자녀 세대에 걸맞은 공간과 소도구 선택을 통해 이를 보다 영상적 구성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 현상으로 보여진다. 무대세트적 주변 정물도구의 구성과 오브랩되는 잔상 이미지의 표현등이 보이는 그대로의 형상이 스스로를 표상해야 한다는 쿠르베의 사실주의적 전통을 뒷받침하고 있는 듯하다. '회상'시리즈에서 볼 수 있는 옹기 그림에서 장승과 할머니를 표징적으로 삽입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노부모의 의상과 그 소도구 또한 아파트 공간내의 소도구와 대조적인 것도 이현희 나름대로의 구성의도와 맞물려있어 현실을 리얼하게 표상하려는 의지를 엿보이게 한다. 이는 달리말해 이현희 자신 단순한 사물의 객관적 묘사를 넘어서려는 - 대상의 선택과 구성을 통해 이현희 자신의 말처럼 '소재를 합성한 듯한 모습으로 화면을 재구성함으로서 새로운 느낌'을 찾고자하는 의도로 간주되기도 한다. '보이는 그대로'에서 또 다른 '보이는 그대로'를 오브랩하는 화면 구성이 그러하고 '회상'시리즈 인물의 배경처리에서 보여지는 추상적 패턴의 차용 또한 이러한 구성적 의도의 일면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러한 의도로 그려진 많은 도구와 구성패턴의 합성이 지나치게 화면을 가득 메움으로써 취사 선택의 여유가 보이지 않아 보는 이로 하여금 지나친 구성탓으로 비우는 것을 통해 보이는 현실을 보다 넉넉하게 볼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는 아쉬움을 준다.

이러한 점을 차치하고서라도 20년 동안 끊임없이 노력해온 결실로서의 이번 작품전을 보면서 필자가 흐뭇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보다 탄탄한 소묘력이 바탕이 된 '손으로 그리기'를 포기하지 않고 그려내는 일면 무섭기도 한 집요한 성실성이다. 이는 달리 말해 나름대로 그가 생활 속에서 만나는 평범한 일상적 소재를 보다 진지하게 관찰하려는 집념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러한 집념에 보다 여유로운 미소가 균형을 이룬다면 필자는 물론 관람자 또한 보다 포근한 마음으로 그림 속에 빠져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램이 들기도 한다. 이번 작품전에 이런 징후가 엿보이고 있다면 그의 날카로운 통찰력, 숙련된 소묘력을 투사하는 대상이 되고 있는 가족이나 토벽 등에서, 미소에 버금되는 무의식적인 시선의 표징으로 언제나 따뜻한 햇살이나 조명이 상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야말로 또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되는 희망적 징후이기도 한 것이 아닐까. 아무튼 그의 작품 속에는 왠지 삶에 대한 자신감 넘친 건강한 시선이 넘쳐나 있다.
 
부산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 교수
김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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