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53    업데이트: 24-03-07 09:52

CRITIC

이원동 개인전 -바람의 흔들림 속에도- 김찬호(경희대교육대학원 교수·미술평론가)
아트코리아 | 조회 270
이원동 개인전
-바람의 흔들림 속에도-
김찬호(경희대교육대학원 교수·미술평론가)

바람의 흔들림 속에도

나무의 원천은 뿌리를 본질로 한다. 그러나 그것이 고착화되면 동일성으로 묶인다. 이런 고착화固着化된 사고 속에서는 차이difference를 만들어 낼 수 없다. 차이는 타자와의 관계에 있다. 차이는 자연과 인간관계의 접속을 통해 다중의 주체들이 여러 방식으로 만나면서 다양체를 만들어낸다. 질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는 신이나 인간이 주체가 아닌 모든 사물의 평등을 리좀Rhizome1으로 설명한다. 이는 모든 사물이 평등하게 그리고 이상적인 것을 만들어 가는 것을 말한다.

문인화를 일반적으로 문인들이 여기餘技로 그린 그림이라고 한정하는 순간 고착화되고, 문인화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 속성은 확장성을 잃게 된다. 석경石鏡 이원동李元東은 ‘문인화란 이것이다’라는 틀에 얽매이지 않고 사물에 대한 남다른 시선으로 물상에 대한 내적 본질을 찾아가고 있다. 그의 서예와 그림에 대한 천착穿鑿은 스물아홉번의 개인전을 통해 알 수 있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하고, 작품은 철학의 반영이다. 이원동은 서예를 기반으로 실험적인 조형 언어로 현대 문인화의 길을 개척하고 있다. 그의 작업은 물상에 대한 치밀한 관찰을 통해 그 대상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 속성을 극대화하여 함축된 획劃으로 서書와 화畵의 경계를 화면에 펼쳐낸다 2.

“나는 저녁 9시반에 잠이 들고 새벽 3시에 일어난다. 그 생활이 30년이 되었다. 새벽에 절에 가는 길에 대숲을 만났다. 대나무 잎이 왜 처질까 생각해 보았다. 대숲에 이르렀다. 댓잎이 바람과 이슬에 맺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살며시 흔들리며 물방울이 흩어지는 것을 보았다. 대나무가 내 마음에 흠뻑 젖었다. 그 길로 대숲을 나와 부처님에게 얼른 인사하고 돌아와 그 인상印象을 화폭에 담는다.”3 뛰는 가슴을 부여잡고 작업실로 달려가는 작가의 발걸음이 들리는 듯하다. 예술은 끈질긴 작업, 지속적인 관찰을 필요로 한다. 끈질기다는 1차적으로 쉼 없는 노력을 뜻하지만 다른 사람의 말에 휩쓸려 결코 자신의 견해를 포기하지 않는 것도 의미한다. 세심하게 찾는 이에게 아낌없이 내어주는 것이 자연이다. 이원동 작가는 그 자연의 본질을 화면에 담는다.

나란히 늘어선 네 선은 시각적으로 불편해 보인다. 작가는 그 불편함을 선의 변화로 깨뜨리고 있다. 법도를 벗어남을 통해 법도를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기존의 보편적 질서에 순응하지 않고 자기의 시선으로 자연을 본다. 난초 뒤로 아스라이 보이는 댓잎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맑은 바람(淸風)이 불어온다. 바람의 흔들림 속에도 바람의 흐름에 따라 휘어지고 엉키고 다시 풀어지며 제자리를 찾아간다. 이렇듯 작가는 탁월한 시선으로 순간의 찰나를 잡아 그 자연의 섭리를 그림으로 보여준다.


가지 끝에 눈(雪)은 쌓이고

가지 끝에 눈은 쌓이고, 이내 쌓인 눈은 미풍微風에 날아간다. 봄을 시샘하듯 함박눈이 온 대지를 덮고 있다. 그 속에서도 매화는 혹독한 추위를 참고 견디어 내었지만 결코 그 고통스런 과정을 드러내지 않고 매혹적인 자태로 우리를 맞이한다. 매화는 인고忍苦의 과정을 통해 꽃을 피우고 며칠을 견디지 못하고 소복이 내리는 눈의 무게에, 흔들리는 바람에, 새벽 찬 서리에 주저함이 없이 떨어진다. 그래서 추사는 “꽃을 보려거든 그림으로 그려서 보아야 해(看花要須作畵看)”4라고 말했다. 자연의 생성과정을 오롯이 내어준 인상을 포착해 화면에 옮겨 찰나에 영원성을 부여하는 것, 그것이 그림이 가지고 있는 효용성이다.

<202211>은 2021년 12월31일에서 2022년 새해까지 해를 넘기면서 작업한 작품이다. “매화를 선택한 이유는 희망을 담아보고 싶어서다. 겨울은 지나고 어김없이 봄은 온다. 매화는 봄을 알리는 전령傳令과 같다. 내 마음에도 봄은 왔고, 잔치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두 사람이 얼싸안고 춤을 춘다. 둘이면서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둘인 연리지連理枝다. 에너지를 담아내고 밝은 미래를 위한 기원을 담았다.”5 이원동은 타이거 JK의 몬스터Monster를 즐겨 듣는다고 했다. 이 작품에는 툭 던지는 나무 둥치의 무거움, 강한 비트beat의 거침과 금방이라도 바람에 떨어질 듯 가녀린 매화가 대조를 이루며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바람의 흔들림 속에도 가지 끝에 눈은 쌓이고 봄은 온다. 이번 이원동 개인전은 생명의 순환을 노래하고 있다. 그의 앞으로의 변화를 향한 여정에도 눈·비·바람을 만날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따뜻한 인정人情을 노래할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왜 하느냐가 중요하다. 바람의 흔들림 속에도 가지 끝에 눈은 쌓이고 봄은 온다.……


<202201>은 파격破格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오른쪽으로 일정하게
1. 리좀은 가지가 흙에 닿아서 뿌리로 변화하는 지피식물들을 말한다. 나무는 뿌리와 가지와 잎이 위계를 가지며 기존의 수립된 계층적 질서를 쉽게 바꿀 수 없는 반면, 리좀은 뿌리가 내려 있지 않은 지역이라도 번져나갈 수 있는 번짐과 엉킴의 형상이다.
2. 김찬호, 「한국 현대 문인화 위치」, 『한국근현대서화작품전』, 강암서예학술재단, 2021. p.172.
3. 「이원동 작가와의 대화」, 대구 석경서화원, 2021.01.09
4. 김정희, 「이심암의 매화를 감상하고 쓰다(主題李心葊梅畵·小幅詩後)」일부.
5. 「이원동 작가와의 대화」, 대구 석경서화원, 2021.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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