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48    업데이트: 17-10-23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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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담바라…제3회 매일시니어문학상 수필 최우수상-김봉순
아트코리아 | 조회 1,846
"며느리 고쳐줄 병원 어디 있노" 아버님 넋두리에 울음이 터졌다

 

"새댁, 얼른 오세요. 어르신이 일을 크게 쳤어요."

빨래를 하다 말고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아 허둥지둥 노인정으로 달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입구에서부터 화장실 냄새 때문에 코를 쥐어야만 했다. 방바닥엔 오줌이 흥건하고 바지에는 대변을 문질러서 노인들이 모두 피해서 바깥으로 나가거나 집으로 투덜거리며 사라진 지 오래다. 어디서 이상한 노인네 하나가 서울 강남 한복판에 들어와서 웃기는 짓을 하고 있다고 불평들이 대단했다고 총무를 맡아보는 할아버지가 귀띔한다. 사실 몇 달 전 시골에서 아버님을 모시고 올 때부터 걱정되어 특별히 부탁을 하고 어르신들이 나눠 들도록 간식거리도 가끔 바치고 경비에 보태라고 몇 푼 희사했던지라 총무님이 그렇게 극진히 대해주고 설명까지 덧붙인다. 막상 예상치 못한 큰일을 당하고 보니 더러운 것도 냄새도 잘 모르겠고 허둥지둥 이 사태를 빨리 수습하고 싶어서 꿇어앉아 방바닥을 닦고 창을 열어 냄새를 빼고 어느 정도 정리를 한 다음 아버님을 모시고 집으로 와서 옷을 벗기고 목욕탕에 들어가게 했다. 잘못을 저지르고 눈치 보는 어린아이처럼 힐끔거리면서 목욕탕에 들어가신다. 곧바로 뒤따라가서 목욕을 시킨다. 고무장갑을 끼고 온몸을 타월로 씻기고 닦고 하는데 가만히 계시던 아버님이 한마디 하신다. "동서양에 이런 법은 없는 기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다 하지만 누가 시애비의 아랫도리를 떡 주무르듯이 씻기노 말이다." 킥! 웃음이 났다. 정신이 돌아오니 창피한 것을 느끼시나 보다.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몸을 문지르고 깨끗이 물로 씻긴 후에 마른 수건으로 닦은 후 방에 모시고 와 어린아이에게 옷을 입히듯 속옷부터 차근차근 입힌다. 몇 달 전 목욕을 할 때는 어쩔 줄 몰라 하시더니 이골이 났는지 이젠 그냥 고분고분 잘 받아준다. "그러지 마세요. 동서양에 시아버님 발가벗기고 목욕시키는 효부 봤어요? 아버님이 뭐 젊기나 한 줄 아세요? 늙어서 등이 굽었고 침을 흘리며 다니는데 누가 뭐 좋아서 하나요? 아버님이 너무 착하고 고마워서 이러는 거예요. 그러니 가만히 계세요. 누가 똥 싼 사람 예쁘다고 그래요? 히히."

그 후 며칠이 지났나? 아파트 경비한테서 아무래도 아버님이 학교 운동장을 맴돌고 있는 것 같다고 학교에서 아파트 관리사무실로 전화를 했다고 가보시는 게 좋을 것 같다 하여 부리나케 달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허리가 90도로 굽은 노인네가 지팡이를 짚고 학교 운동장을 계속 맴돌며 무어라고 중얼거리신다. 쫓아가서 "아버님, 뭐하세요? 누구한테 말하세요?" 물었더니 "아니라, 아니라니까, 빨리 우리 며느리 발을 고쳐야 해, 나 때문에 병신이 다 되었다니까, 내가 고쳐줘야 하는데 병원이 어디 있노? 이놈의 서울은 가도 가도 어딘지 도통 모르겠어. 선생님, 우리 며느리 고칠 병원 찾아 줄래요, 야?"

난 그만 주저앉아 울고 말았다. 내 몸무게가 40㎏, 아버님은 185㎝에 몸무게가 80㎏이 넘는다. 적은 몸무게가 자기보다 갑절이나 되는 몸무게를 씻기고 식사 수발에 뒷바라지를 하다 보니 힘이 부족해 발을 지렛대 삼아 억지로 일으키고 받치고 하다가 언제부터인가 발 곳곳이 이상하게 불뚝 치솟아 이상한 형태로 변하기에 병원에 갔더니 너무 무리하게 힘을 주어 그렇다 하여 그러려니 하며 참고 견디어 왔는데 그것이 그렇게 안쓰럽게 보였는가 보다. 그 마음씀씀이가 너무 고마워서 그만 펑펑 울고 말았다. 남들은 구부(舅婦)간에 어렵고 서먹서먹하다던데 우리는 안 보이면 서로를 찾고 있으니 80대 후반 노인네와 30대 후반인 며느리가 좀 이상할 정도다.

어쩌다 정신이 돌아오는 날은 종일 책을 읽으시거나 신문을 보신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나를 보자고 하시더니 커피 한 잔만 달라신다. 커피를 타 가지고 방에 들어갔더니 앉으라며 내가 시골에 가지고 있는 땅이 이것인데 네게 줄 터이니 잘 보관하라며 권리증을 주신다. 그리고 누구한테 얼마를 빌려주고 적어둔 치부책을 주신다. 나는 얼떨결에 받아 퇴근하고 온 남편에게 그런 말을 하니 아버지가 아무래도 이제 정리를 하시려나 보다 하신다. 그 좋아하던 책도 멀리하고 신문도 안 보시고 그리고 한시 짓기를 좋아하시더니 거들떠도 보지 않으신다.

며칠이 지난 어느 새벽에 느닷없이 누가 문을 두드려 나가보니 막내 시누이가 시골서 새벽 기차를 타고 올라오셨다. 지난밤 꿈자리에 아버지가 나타나서 나 이제 그만 쉬려고 하니 날 좀 씻겨달라고 하기에 기분이 묘해서 잠자리를 털고 올라오셨단다. 그렇지 않아도 극도로 쇠약해져 걱정이 많았는데 갑자기 겁이 덜컥 났다. 그렇다고 겉으로 멀쩡한 분을 어떻게 할 수도 없고 남편이 직장 나가기 전에 서둘러 시누이와 함께 목욕탕에 아버님을 모셔다 놓고 정성껏 온몸을 빈틈없이 씻기고 닦은 다음 새 옷으로 갈아 입혔다. 남편은 출근하기 전에 아버님에게 기저귀를 채워 주고 다녀오겠노라고 나가버렸다. 하루도 고기 없이는 식사를 안 하시는 분이라서 닭죽을 끓이기로 하고 찹쌀을 넣고 정성을 다해 준비하여 아침상을 올리니 이빨을 거의 못 쓰는 형편인데도 다 드시고 기분 좋게 한잠 주무신다고 드러누우셨다. 시누이에게 쓸데없는 꿈자리로 헛걸음을 하셨다고 웃으며 우리도 아침을 먹으려고 막 숟가락을 뜨는 순간 "아아……" 아버님의 단말마 같은 소리가 들려 부리나케 아버님 방으로 들어가 보니 주무시던 분이 갑자기 숨이 넘어가는 것이 아닌가! 소스라치게 놀라 가슴에 들쳐 안고 "아버님, 왜 그래요? 눈 좀 떠 보세요" 흔들어도 눈을 감으신 채 숨을 헐떡거리며 고통에 몸부림치는 것이다. 시누이는 놀라서 반쯤은 정신이 나가고 또 슬픔에 겨워서 방문을 박차고 나가 울고 계시고 조그만 나의 품에 안겨서 헉헉거리며 마지막 숨을 거두시는 것이 아닌가? 아무런 유언도 없이 네가 우리 아들 옆에 있어줘서 고맙다 하는 듯이 내 품에서 조용히 눈을 감으셨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서둘러 남편에게 전화를 하고 시누이를 달래고 집안을 정리하고 아버님을 이부자리를 펴고 똑바로 눕혔다.

조그마한 여자의 몸으로 억세다는 경상도 집의 외며느리가 되어 위로 다섯 시누이들의 목청 높은 사투리에 기가 질리고 매일 밤 아들 방을 기웃대는 시어머니에게 모진 설움을 받아가며 시집살이를 해온 것도 힘든데 무슨 팔자가 센지, 전생 무슨 업보인지 어렵다는 시어머니 시아버지가 전부 이 작은 품에서 임종을 하다니. 시집오기 전에 밥 한 번 안 해보고 금이야 옥이야 자란 몸이 온갖 일을 다 겪는다 싶어 그만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나 원망스럽기만 하던 시어머니 때와 달리 항상 자상하고 며느리 사랑이 지극한 시아버지는 너무 정이 들어 아픈 몸에도 모든 힘을 다 바쳐 극진히 모신 만큼 설움이 더 북받쳤다. 한참 동안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허둥대고 있을 때 남편이 부랴부랴 들어와서 한바탕 울더니 의사를 불러 사망을 확인하고 장례 절차를 밟기 시작한다.

이튿날 장례 순서에 따라 성복식을 할 때였다. 돌아가신 날 시누이와 함께 온몸을 깨끗이 닦긴 했어도 다시 몸을 닦고 준비해 둔 옷을 입히는 중이었다. 세상에서 입고 있던 옷을 벗기고 저승 옷을 입혀 신고를 한다는 절차에 따라 아버님의 옷을 벗기는데 차고 있던 기저귀를 떼고 몸을 닦으려는 순간 기저귀에 질긴 노란 배설물이 보였다. 하루 동안 갈지 않고 그냥 두어서 그런지 연하게 번지어 어떤 이에게는 약간 더럽고 역겨운 점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매일 아옹다옹하면서 실랑이를 해온 일상의 기록물 같은 그것을 보는 순간 그 팬티에 있는 것이 무슨 우담바라 꽃처럼 보이는 것이다. 황황히 그 팬티기저귀를 손에 들고 내 방으로 돌아와 펑펑 울었다. 왜 그 배설물이 설움을 북받치게 하는 걸까? 치매 든 시아버지를 좁은 아파트에서 모신다는 것이 힘들고 말 못할 별의별 일들이 많아 발이 튀어나오고 허리가 비틀어져 의사들도 다들 그만하라고 할 정도로 몸이 망가지긴 했지만 내 기쁨으로 한 일이라 전혀 후회가 없는데 왜 서러울까? 부처님의 그 꽃을 본 적이 없지만 마음씨가 비단 같은 아버님은 다음 세상이 있다면 천국에 갔을 것이고 거기에서 피운 꽃이 이런 것이 아닐까 하여 눈물이 나는가 보다.

오늘은 아버님 돌아가신 지 30년째 되는 기일이다. 친정 부모님 기일도 있고 다른 어르신들 기일도 있지만 다른 기일은 그냥 일종의 형식으로 치르고 있다면 아버님은 지금도 금방 어디선가 튀어나와 "내가 우리 며느리 병을 고쳐야 하는데, 선생님, 어디가 병원인지 좀 가르쳐 주이소." 하실 것만 같아 가슴이 늘 찡하다.

<10월 10일 자는 2017 시니어문학상 시 부문 최우수상 서정호 씨의 '길이 물처럼 흐르고 물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가 게재됩니다.>

 

※매일시니어문학상은

전국 언론사 최초로 매일신문이 제정해 운영하는 어르신들을 위한 문학상 공모전입니다. 당선작 발표일(매년 7월 7일) 기준, 만 65세 이상이며, 미등단 및 등단 10년 이하인 분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공모 부문은 논픽션(200자 원고지 100매 이상), 시(7편 이상), 수필(5편 이상) 등 3부문이며, 작품 주제에는 제한이 없습니다. 2018년도 매일시니어문학상은 2018년 5월 초순 모집공고를 내고, 6월 초순 마감하며, 7월 7일 매일신문 창간기념호에 당선작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매일신문은 시니어문학상을 통해 선배 세대의 지난했던 삶을 기리는 한편, 문학작품을 통해 선후배 세대가 공감과 감동의 폭을 넓혀 함께 더 나은 대한민국을 건설해 나가기를 희망합니다.

 

김봉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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