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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꾼 강사가 되다①…제3회 매일시니어문학상 논픽션 최우수상
아트코리아 | 조회 1,805
"장남이 환생한겨!"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자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삽화 이태형
 

원주

◆프롤로그

사람은 태어나면서 숙명과 운명을 제각각 가지고 태어난다는 말이 있다. 숙명이란 태어나 보니까 대한민국이고 남자로 태어났다든지 하는 등이고 운명이란 가난한 집안이냐 부유한 집안이냐 등을 말하는 것이다. 숙명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바꿀 수가 없다. 그렇지만 운명은 노력 여하에 따라 바꿀 수 있어 부유해질 수도 있고 가난하게 될 수도 있다.

나는 지긋지긋하게도 운이 좋지 않은 시기에 태어났다. 동족 간에 서로 죽이고 죽는 아비규환의 한국전쟁, 즉 6`25둥이로 태어났다.

척박한 지리산 기슭 소작농의 팔 남매 중 늦둥이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나는 3월에 태어났고 6`25전쟁은 6월에 발발했으니 강보에 싸인 채 포성을 들으며 이불 속에서 마냥 방치된 채로 자랐을 터였다.

내가 성장하면서 들어 알게 되었지만 우리 집은 이미 전쟁의 피해를 당한 집안이었다. 바로 여수반란사건으로 인하여 아버지의 장남, 나의 큰형을 모략으로 잃은 것이다.

1948년 10월 여수에 주둔하고 있던 14연대가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정부에서 14연대에 명령을 내렸다. 제주도로 가서 4`3사건의 진압을 명한 것이다.

14연대 내에는 북한 정권과 내통하고 있는 장교나 하사관들이 많았다고 한다. 이들이 연대장이 퇴근한 밤에 모의를 하고 반대하는 장교들을 살해하고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이들은 여수 관공서를 삽시간에 점령하고 파죽지세로 순천으로 진격하였다. 순천도 단숨에 점령하였다. 이미 포섭이 된 민간인들이 대지주나 유지들을 포박하여 많은 사람을 모아놓고 인민재판을 열었다. 죽창으로 찌르고 참혹하게 처형하였다.          

반란군들이 서울을 향해 북진하자 정부는 뒤늦게 대규모 진압군을 내려보냈다. 곡성에 진을 치고 반란군들을 진압하자 화력과 병력이 열세인 반란군들은 숲이 울창한 구례 방향 지리산으로 숨어들었다.

낮에는 숨어 있다가 밤에는 마을로 내려와 식량 약탈과 포섭을 병행하였다. 마을마다 지역책들이 생기고 붉은 사상이 급속히 번져 나갔다.

일제강점기부터 지주들에게 착취를 당했다고 생각하는 소작농들이나 불평불만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 포섭되어 더러는 지리산으로 올라가 공비가 되었다.

포섭된 사람들은 주로 무식한 머슴들이나 무식층이 많았다. 엘리트들도 포섭하라는 지령이 내려지자 지역책들은 구례읍에 나가서 중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의 이름을 명부에 올렸다.

당시에 나의 큰형은 중학교 3학년으로 열일곱 살이었다. 당시는 초등학교만 졸업해도 농협 서기나 학교 선생님도 할 수가 있었다고 한다. 특히 전교 수석을 차지하여 기대가 컸다고 한다.

지리산에 반란군을 비롯하여 지방 빨갱이들이 늘어나고 세가 커가니 정부에서는 지리산 공비토벌 작전을 단행하였다. 지리산 지역에 계엄령을 내렸다. 인근 마을 주민들을 면 소재 학교로 소개시키고 마을마다 수색을 하였다. 입당원서가 발견되었다. 구례군 전체에서 30여 명의 중학생 명단이 발각된 것이다.

계엄군들이 중학교에 들이닥쳐 명부에 실린 학생들을 굴비 엮듯 묶어 트럭에 태웠다. 학생들은 섬진강변으로 실려가 재판 과정 없이 총살을 당했다. 시체를 찾아가라는 연락을 받고 학부모들은 실신을 하거나 반 넋을 잃었다.

피투성이로 얽혀 있는 시신들 중에서 자기 자식을 찾은 부모들은 통곡을 하며 공동묘지에 묻었다.

아버지는 식음을 전폐하며 삶의 의욕을 잃었다.

다음해 내가 잉태되고 태어나니 아버지는 흡사 심학규처럼 핏덩이 나를 안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아이고 죽은 장남이 환생한겨! 조상님들이 내 억울함을 풀어주려고 보낸거여!”

아버지 나이 환갑에 나를 얻으니 사람들은 기적이라고 했다.        

어머니는 노산이라 모유가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핏덩이 나를 안고 젊은 아낙들을 찾아다니며 동냥 젖으로 나를 키웠다.

아버지는 장남을 모략으로 잃은 후 금학령을 내렸다. 누님들은 모두 학교에 보내지 않았고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던 지금의 큰형은 중퇴를 시켜버렸다. “난리통에는 무식해야 살아남는 거여! 자식을 또 잃을 수는 없지!”

---이런 연유로 누님들은 까막눈으로 세상을 살게 되었다. 내 위의 형은 열두 살에 비로소 입학을 할 수가 있었다.---

◆가난의 세월 그 시절의 기억들

부모님 세대 아니 우리 세대는 참으로 많은 고통의 시절을 보냈다. 특히 부모님 세대는 일제강점기 35년의 세월을 착취로 굶주렸다.

겨우 해방을 맞았으나 보릿고개가 떡 버티고 있었다. 죽어라 농사지어야 지주에게 70%의 수확량을 주고 나면 봄이 오기 전에 식량은 바닥이 난다. 다시 지주 집에 가 장리 쌀 한 가마를 빌려온다. 농사지어 가을에 한 가마 반을 갚아야 한다. 이러니 형편이 좋아지기가 어렵다.

식구들은 흥부 자식들처럼 많은데 식량은 부족하니 나물죽이나 쑥범벅 송키까지 벗겨 먹었다. 보리가 익어야 비로소 배가 부르고 방귀가 나오게 되었다. 이 기간을 보릿고개라고 하였다. 어른들은 영양부족으로 현기증이 떠나지 않았다. 아이들은 배가 맹꽁이가 되었다.

지금의 아프리카 난민 어린이들이 그 모습이다.

소나무 껍질을 벗긴 것을 송키라고 한다. 이것을 가루로 만들어 밥을 지어 먹으면 어김없이 변비에 걸린다. 똥구멍이 막혀 변이 나오지 않으면 관장을 하였다. 싸리나무로 젓가락을 만들어 항문을 벌리고 똥을 파내었다. 어린이들은 아파서 울고 어머니들은 가슴이 아파 울었다.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은 벼룩과 이들이었다. 벼룩들은 길길이 뛰면서 이동하며 피를 빨고 이들은 솜옷에 파고들어 사람들을 괴롭혔다.

희미한 호롱불 아래서 남자들은 옷을 벗고 이를 잡았다. 이를 손톱 사이에 놓고 으깨면 손톱에 핏물이 들었다.

이러한 광경들은 어느 마을이나 비슷한 실정이었다.

주로 방 한 칸에서 많은 식구가 생활하니 비좁고 불편하였다. 식량 부족으로 영양 섭취가 부족한데 벼룩이나 이 같은 해충이 괴롭히니 하루하루 살아가기가 힘에 겨웠다. 그래도 사람들은 잘도 견디었다. 자살을 하는 사람들이 극히 드물었다. 몇 년에 한두 번씩 가정불화로 저수지에 빠져 자살하거나 감나무에 목을 매단 일은 있었다.

전쟁과 기근으로 인하여 가난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이러다 보니 산골 마을에서는 교육열이 일어나지 않았다. 모두들 까막눈인 채로 세상을 살았다.

더구나 여수반란사건으로 인하여 중학교에 다니던 자식들을 잃은 부모들은 충격이 컸다. 이왕 다니고 있던 자식들도 퇴학을 시켜버리고 입학을 시키지 않았다. 다시 전쟁이 나면 배운 자가 먼저 희생당한다는 것을 체험한 것이다.

<8월 29일 자는 2017 시니어문학상 논픽션 부문 최우수상작인 홍원주 씨의 '나무꾼 강사가 되다②'가 게재됩니다.>

 

※매일시니어문학상은

전국 언론사 최초로 매일신문이 제정해 운영하는 어르신들을 위한 문학상 공모전입니다. 당선작 발표일(매년 7월 7일) 기준 만 65세 이상이며, 미등단 및 등단 10년 이하인 분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공모 부문은 논픽션(200자 원고지 100매 이상), 시(7편 이상), 수필(5편 이상) 등 3부문이며, 작품 주제에는 제한이 없습니다. 2018년도 매일시니어문학상은 2018년 5월 초순 모집공고를 내고, 6월 초순 마감하며, 7월 7일 매일신문 창간기념호에 당선작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매일신문은 시니어문학상을 통해 선배 세대의 지난했던 삶을 기리는 한편, 문학작품을 통해 선후배 세대가 공감과 감동의 폭을 넓혀 함께 더 나은 대한민국을 건설해 나가기를 희망합니다.

 

홍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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