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48    업데이트: 17-10-23 10:28

매일신문연재삽화모음

88올림픽이 열리면서 유사 마사지 업소 우후죽순으로 도심에 퍼져 / 2017-04-18 / 매일신문
아트코리아 | 조회 959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면서 스포츠 마사지라는 이름으로 유사 마사지 업소가 우후죽순처럼 도심에 퍼졌다. 당국조차 한때는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을 도모한다는 구실로 묵인하거나 오히려 장려하는 태도도 보였었다. 맹인들이 항거에 나섰다. 스포츠 마사지 아지트를 점거하고 업소에 쳐들어가 때려 부수고 아수라장을 만들었다. 불법 영업임을 국민에게 알리고 경찰에 고발했다. 그런데도 유사 마사지업소는 계속 다른 이름으로 위장하며 독버섯처럼 퍼져 나갔다. 그들은 전국에 10만여 개 업소에 100만 명 이상의 마사지사가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심지어 1만 명도 안 되는 시각장애인 안마사 모두를 먹여 살리겠다고 입 꼭 다물고 있으라고 조롱하기까지 했다. 이들이 ‘헌법재판소’에 위헌소송을 제기했다. 과거 100여 년 동안 앞을 못 보는 사람들이 오직 하나뿐인 생계 수단으로 움켜잡고 살아왔던 유일한 그 밥통을 빼앗기 위해 그들은 혈안이 되어 있었다.

2006년 5월 25일 헌법재판소는 ‘시각장애인에게만 안마사 자격을 주는 현행 제도는 국민의 헌법에 보장된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기 때문에 위헌’이라는 결정을 재판관 찬성 7 반대 1로 내렸다. 이에 따라 시각장애인이 아닌 일반 국민도 안마사 자격을 받을 수 있게 되어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은 생계의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게 되었다. 대한안마사협회 소속 안마사들은 ‘위헌결정은 시각장애인의 거의 유일한 생계 수단을 박탈하는 조치’라며 반발했다. 생존권의 박탈로 간주된 이 결정은 안마업에 직접 종사하고 있는 시각장애인뿐만 아니라 전국의 시각장애인 학생들에게도 장래의 직업 재활에 대한 잠재적 위험 요소가 되었다. 위헌결정이 내려진 다음 날부터 전국에 걸쳐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그 열기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욱 과격해지고 있었다. ‘헌법의 상위법은 떼법인가?’

2006년 5월 26일 대한안마사협회 경기지회는 오전 7시부터 비상동원령을 발동하여 경기도청 옥상을 점거했다. 옥상 난간에 밧줄을 매고 매달려서 고공 시위를 벌였다. 과천정부종합청사에 집결하여 농성을 벌였다.

5월 29일 안협 비상대책위원회의 주도하에 전국의 안마사 4천여 명이 광화문 근처의 ‘서울 열린 마당’에 집결하여 ‘헌법재판소’ 결정 철회와 안마사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는 농성에 돌입하였다.

5월 30일과 6월 1일 마포 둔치에 집결 농성 중이던 안마사 중 일부가 마포대교 남단 난간으로 올라가 고공 시위를 하던 중 안마사 8명이 한강으로 투신하였다.

맹학교 학생들은 수업을 전폐하고, 학교 문을 나서 다른 안마사들의 시위에 합류했다.

청와대 국회의사당 정부종합청사 국가인권위원회 명동성당 등을 순회하며 점거하고 농성하며 빼앗긴 안마사들의 생명줄을 되돌려달라고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호소했다.

고속도로 아스팔트 길바닥에 엎드려 차들의 통행을 막고, 지하철 철로에 누워 열차 운행을 저지했다. 생명을 건 투쟁이 이어졌다. 안마사 두 사람이 신세를 비관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 사람은 고층 아파트에서 투신했고, 한 사람은 다량의 극약을 음복했다.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에 대한 부당성을 지적한 전단을 살포했다. 거리를 돌며 가두방송도 했다. 야간 촛불시위도 벌였다. 백만인 국민 지지 서명을 받았다.

비단 안마사들뿐만 아니었다. 전국의 25만여 시각장애인 등 100만 명에 가까운 가족들이 함께 분노했다. 지체장애인 청각장애인 등 여타 장애인들도 투쟁에 동조했다. 휠체어를 타고, 목발에 몸을 의지하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언론의 붓끝이 이 사건에 몰리기 시작하고, 국민의 관심이 쏠렸다. 안마사들에 대한 동정 여론이 전국에 확산되었다.

정부가 움직였다. 안마사 자격 제도 위헌결정에 따른 보안입법 추진 움직임이 일어났다. 6월 30일 안협 비대위와 여당인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김한길 의원 및 국회 보건분과상임위 간사 합동회의가 열렸다. 안마사의 요구대로 입법안을 마련토록 의견이 모였다.

헌재의 판결을 존중하되 다만 종전과 다름없이 시각장애인들이 안심하고 안마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대체입법을 보장하는 방편을 차기 국회에서 통과시키기로 약속했다.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투쟁의 양상이 달라졌다. 국회의사당 앞에 진을 쳤다. 장기 투쟁에 돌입했다. 전국 16개 시도에 소속된 안마사들이 지부별로 번갈아가며 국회 앞에서 시위했다. 삭발하고 단식하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투쟁이 이어졌다. 한나라당 정하원 의원과 열린우리당 장향숙 의원의 활동으로 대체입법안이 의원발의되었다.

2006년 8월 대한민국 제17대 임시국회가 열렸다.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이 발표된 이후 약 100여 일이 지난 뒤였다. 안마사의 자격 기준을 규정한 의료법이 마침내 국회를 통과하였다. 그동안 안마사에 관한 규칙으로만 확보된 안마사들의 지위가 의료법에 정식으로 명시된 것이다. 이날 통과된 의료법 제82조의 내용을 간추려본다.

*시각장애인만 안마사 취득* 제82조(안마사) 1. 안마사는 장애인복지법에 따른 시각장애인 중 특수학교 중`고등학교에 따른 교육을 하는 학교에서 안마사의 업무 한계에 따라 물리적 시술에 관한 교육과정을 마친 자

2. 중학교 과정 이상의 교육을 받고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정하는 안마 수련 기관에서 2년 이상의 안마 수련 과정을 마친 자는 안마 업무를 할 수 있다. 안마사에 대하여는 시`도지사에게 자격 인정을 받아야 한다.(후략)

안마사는 대한민국 헌법의 법 테두리 안에서 의료법이 인정하는 당당한 유사 의료인이 된 것이다.

유사 불법 마사지 단체에 의해 제기된 시각장애인에 대한 안마사 자격증 독점에 관한 소송은 모두 3회에 걸쳐 있었다. 2006년 5월 25일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 이전인 2003년 6월 26일 헌법재판소는 이미 합헌판결을 내린 바 있었고, 2008년 10월 30일 또 한 번 유사 마사지 단체로부터 제기된 위헌소송은 헌법재판소에 의해 기각되었다.

덧글 0 개
덧글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