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민족 시인 이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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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26    업데이트: 17-12-11 09:39

상화 앨범

이상오는 초대 대한사격회 회장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아트코리아 | 조회 991

 

상화의 둘째 동생인 수렵인 이상오.


“6척 키에다 문무를 겸해 일본 체육계에 그만한 인물이 없었다는 평입니다. 스물여덟 무렵에 일본농구협회 상무를 했고 서른이 넘어 일본 체육회 전무가 되었다고 해요. 당시 일본 체육회는 전부 황족들이 도맡았는데 황족과 교분이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조선인이면 모두 창씨개명(創氏改名)을 할 때도 그분은 개명을 하지 않았다고 해요. 누구 하나 함부로 개명을 권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상백은 독신으로 지내다 55살에 결혼했다. 자녀를 두지 않았다고 한다.

막내 이상오(1905~1969)는 해방 전까지 경북 칠곡에서 양조장을 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자”, 취미로 수렵을 한 것이 평생의 직업이 됐다. 형 이상백이 대한체육회에 있을 때 이상오는 초대 대한사격회 회장이 됐다. 글재주가 뛰어나 《야생동물기》의 저술가로 명성이 높았다. 이상오는 슬하에 5남2녀를 뒀다. 첫째 사위가 육사2기로 박정희 대통령의 동기인 윤온구(尹溫求) 대령이다. 둘째 사위는 5·16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혁명검찰부장이었던 박창암(朴蒼巖) 장군. 충희씨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대학 동창 중에 세계적인 과학자가 된 친구가 있는데 이런 말을 해요. ‘너희 아버지 형제가 모두 출중한데도 제일 오래 이름이 회자하는 이는 독립투사 이상정, IOC 위원 이상백, 수렵인 이상오가 아니라 일찍 돌아가신 시인 이상화’라고요.

요즘도 아버지 시를 노래하는 이가 많고, 전국 곳곳에 시비가 건립되며, 시에 대한 새로운 평가도 나와 놀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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