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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평론

[전원 속 예술가들 .41] 서양화가 이명재 - 영남일보 2013-6-25
아트코리아 | 조회 1,414

[전원 속 예술가들 .41] 서양화가 이명재

 

어느 곳에 눈을 두어도, 그림이 되다

무릉도원의 모습으로 다가온, 고향자락에 작업실 두고

“자연에서 와서 결국 자연으로” 삶의 근원적 주제 표현

10월 개인전서는 평면에서 입체적 기법으로 새 시도도


1964년 성주에서 태어났다. 계명대 서양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90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지난해까지 대구, 서울 등지에서 열여섯 차례 개인전을 열었다.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 대구미술대전 대상, 신조미술대상전 대상, 대구도시공사 창사 20주년 기념 환경조형물공모 우수상 등을 받았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대구문화예술회관, 대구오페라하우스, 계명대, 대덕문화전당 등에 소장돼 있다.

 

2000년대 초쯤이다. 낙동강으로 야외스케치를 나갔던 화가 이명재는 강 건너 보이는 아름다운 마을에 한눈에 반해 버렸다. 약간 안개가 낀 듯한 날이었는데, 그 마을이 마치 무릉도원처럼 다가왔다.

“어머니의 품처럼 아늑하고, 이 세상 어느 곳보다도 아름다운 무릉도원처럼 보이더군요. 그래서 물어물어 찾아갔지요. 성주 선남면 선원리에 있는 마을이었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선원리를 일명 무릉리라고도 부른다 하더군요. 제가 제대로 그곳을 본 것이지요. 또 그만큼 그곳이 아름답고 좋은 곳이란 의미겠지요.”

이렇게 그 땅을 마주한 그는 2003년 선배인 박휘봉 조각가를 설득해 같이 땅을 매입했다. 벌이가 변변찮은 화가가 보자마자, 그것도 선배를 설득해 땅을 살 정도로 그곳이 매력적이었던 것이다.

“강 건너에서 봤던 모습보다 막상 이곳에 들어오니 더 좋았습니다. 큰 길에서 한참을 들어와야 하는데, 계속 꼬불꼬불한 산길이라 처음 오는 사람은 찾기가 쉽진 않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애를 먹고 와서는 이곳 경치를 보면 그 정도 고생은 괜찮다 말하지요. 고생한 보람이 있으니까요.”

그의 작업실에서는 낙동강을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다. 자연경관의 아름다움을 떠나서 시야가 탁 트이는 느낌은 도시에서는 좀처럼 만나볼 수 없는 것이다. 그는 낙동강이 이렇게 아름다운 줄 이곳에 들어온 후 알게 됐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가 이곳에 이렇게 깊은 정을 가진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의 고향은 성주다. 그런데 우연히 매입하게 된 이곳도 성주인 것이다. 고향 자락에 새로운 삶의 터전을 얻게 됐으니 그 푸근함을 무엇으로 설명할까.

‘성주 촌놈’이라고 밝히는 이 작가는 “중학생 때까지 성주에서 살다가 고등학생 때부터 대구에서 다녔다. 늘 고향에 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이렇게 다시 고향에 오게 됐다”며 “처음 이 땅을 샀을 때는 이곳이 밭이었다. 밭에 조그만 오두막집이 있는 풍경이 옛날 어릴 적 고향집을 떠올리게 했다”고 밝혔다.

시골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란 그가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심정은 그림에도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줄곧 땅, 숲 등 자연과 관련된 작업을 해 왔다. 1990년 첫 개인전을 열 당시만 해도 그는 추상성이 있는 작품을 그렸다. 하지만 그의 그림 중심에는 늘 자연의 색이 자리했다. 녹색, 황토색이 작품의 주된 색상이었다. 시골에서 자랐으니 그가 흔히 볼 수 있던 색이 이들 색상이었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작품으로 들어왔다.

97년 달성군 구지면의 한 폐교에 들어가서 작업했는데, 이때는 폐교 마룻바닥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탁본기법으로 마루의 결을 살려 조형성을 보여주는 작품을 만들었다. 그때 그 폐교에서 박휘봉, 김성수 조각가와 함께 있었는데, 이들의 영향을 받아 평면작업에 입체작업을 접목하기 시작했다. 마룻바닥이 갖는 입체감을 한지죽을 활용해 살린 것이다.

그의 작품에 대해 한 미술평론가는 “우리의 전통가옥인 한옥의 툇마루를 전통종이인 한지를 사용해 그대로 찍어내어 툇마루가 주는 나뭇결의 편안함과 세월의 흔적 등을 통해 시간의 덧없음을 말해주려 한다. 나뭇결 위에 식물의 잎, 대나무 등을 그려넣어 삶의 근원적인 원리인 ‘인간은 자연에서 와서 결국 자연으로 돌아간다’라는 대명제에 다가서려는 작가의 의도가 스며 있다”고 평했다. 그래서인지 하얀 한지에 마룻바닥의 결을 살린 그의 작품들은 시골집처럼 푸근하고 정겹다.

마룻바닥을 모티브로 하지만 이 작가는 작품에서 끊임없이 변화를 꾀하고 있다. 하얀 한지에 마룻바닥의 입체적 느낌이 살아 있는 화면을 캔버스 삼아 대나무를 그리기 시작했다. 한국화의 중심소재인 사군자 중 대나무를 택한 것은 개인적으로 그가 좋아하기 때문이다. 대나무는 아름다운 데다 강인함을 상징한다. 거기다 실용성까지 있어 일찍부터 일상생활에서는 물론 예술분야에서 끊임없이 사랑을 받아왔다.

“대나무는 여러모로 쓰임새가 있습니다. 이런 쓰임이 있는 존재라는 것 자체가 매력적인 데다, 그 자태가 아름다우니 자연스럽게 그림의 소재로 삼게 됐지요. 특히 이곳으로 이사 온 뒤 주위에 펼쳐진 대나무밭을 보면서 제 그림에서 좀 더 다채롭게 표현하게 됐습니다.”

작업실에서 취재를 하면서 그의 설명에 따라 변해 온 작품들을 직접 보고는 자신을 ‘촌놈’이라고 불렀던 작가의 말이 “맞구나” 하며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그에게서 생활에서는 물론, 작업에 있어서도 철저하게 시골마을에서 자란 사람의 냄새가 풍겨났다. 아니, 어찌 보면 시골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마음이 스며있는 듯했다.

“보잘것없는 촌집에 오셔서 대접할 것도 없고”라며 취재 온 기자를 맞이한 그의 집은 밖에서 볼 때는 괜찮은 전원주택처럼 느껴졌다. 집 모양도 그러했고, 잔디를 심어놓은 깔끔한 앞마당이 아담하지만 분위기 있는 집처럼 다가왔다. 하지만 그는 “촌놈이다 보니 그림 그리다가 좀 쉬어야 될 때가 된 것 같으면 마당으로 나가 텃밭을 가꾼다”며 “식구들이 먹을 채소를 여기서 직접 키워 먹는다”고 말했다.

텃밭이 보이질 않아 “어디서 기르냐”고 묻자 손끝이 가리키는 곳은 마당의 가장자리였다. 서너 평이 될까 말까 하는 텃밭에는 상추, 깻잎, 고추, 가지, 오이 등 갖가지 채소가 자라고 있었다. 이렇게 키워 먹는 재미가 대단하다는 그는 “늘 보고 있는 것이 이것이다 보니 그림도 자연 이외의 것은 생각할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대나무를 주로 그리지만 그의 작업실에 있는 그림들을 좀 더 찬찬히 들여다보면 도라지꽃, 호박꽃 등 그의 집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꽃들을 소재로 한 작품도 눈에 띈다. 그는 이 같은 작품에 대해 “잠시 외도를 했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그의 집 주변을 살펴보니 그의 외도가 이해가 갔다. 보통사람들도 자연환경의 영향을 받는데, 예술가인 화가는 얼마나 더 여기에 민감할까. 주변의 풍경들이 그의 가슴으로, 그림으로 들어오지 않을 수가 없을 듯했다.

작업에서 끊임없는 변화를 추구하던 그는 오는 10월 수성아트피아에서 열리는 개인전에서 또 한 차례 새로운 시도를 보여준다. 그동안 평면으로 표현했던 대나무를 입체로 담아내고자 하는 것이다. 대나무의 형태를 한지로 입체적으로 만들어 그림에 붙이는 등의 시도를 하겠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작업실에는 이를 위해 대나무를 한지죽으로 입체적으로 뜬 것들이 있었다.

“강과 숲 외에는 없는 이곳에서 자연을 벗 삼아 그림을 그리는 것이 제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모든 일입니다. 지금은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주말에만 이곳에서 작업하는데, 앞으로는 아예 살림집까지 이곳으로 옮겨 작업에만 매진하는 것이 꿈입니다. 그 꿈이 빨리 이뤄지길 바랄 뿐입니다.”

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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