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이 먹는 모습만 봐도 배부른 부모 마음 고스란히 담긴 인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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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옥 도예가는 대구가톨릭대 공예디자인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개인전 11회를 열었으며 국제대회에서 다수의 입상 경력이 있다. 현재 대구가톨릭대 평생교육원 외래교수, 수성구 고산평생교육원 도예강사, 수성문화원 도예강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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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개인적으로 미국의 여성화가 ‘메리 케세트’(1844~1926)를 좋아합니다. 파리의 인상파운동에 직접 참가한 유일한 미국인이었던 그는 어머니와 아들을 중심으로 한 중류가정의 정경을 즐겨 그렸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부호의 딸로 태어나 미국에서 미술공부를 한 뒤 생애의 절반을 유럽에서 보냈고 일생을 독신으로 지냈지요. 인상파 특유의 따뜻하고 풍성한 이미지에 가족의 모습을 그린 그의 작품은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가슴이 따뜻해져 옵니다. 색채는 물론 그림의 내용이 주는 그 느낌이 바쁜 직장생활 속에 메말라버린 듯한 모성을 잠시나마 자극해서일까요.
이경옥 도예가는 2014년부터 가족을 비롯해 사랑하는 사람들의 인물상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도예가들처럼 다완, 항아리, 생활자기 등을 제작해왔는데 어느 날 문득 사랑하는 사람에게 귀한 선물을 해주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것이 바로 둘째딸 배민지씨(33)의 인물상이었습니다. 그 후로 손자, 외삼촌 등 가족은 물론 유달리 정이 많이 든 지인들의 인물상도 하나둘 만들어갔습니다.
올해는 첫째딸 배소정씨(38)의 인물상도 제작했습니다. 작은딸 인물상만 만들어 늘 가슴 한편이 헛헛했는데 과감히 큰딸의 인물상에 도전한 것입니다. 그 인물상을 보는 순간 큰딸의 모습이 참 아름답고 순수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딸 참 예쁘지요” 하며 휴대전화에 저장된 딸의 사진까지 보여주는 그는 ‘아름다운 딸바보’처럼 보였습니다. “변리사인데 애가 착하고 직장에서도 능력을 인정받고 있어요. 내 딸이지만 자랑스러워요.” 수줍어하는 모습으로 딸 자랑을 하는 그에게서 딸을 향한 진한 사랑이 느껴졌습니다. 그건 아마 나 역시 자식을 둔 부모이기 때문이겠지요. 전혀 밉지가 않고 그 모습에서 진정한 모성까지 강하게 전해졌습니다.
이 말 끝에 그 인물상의 제목에 대한 설명도 곁들였습니다. “내가 결혼 전 딸에게 항상 ‘원석의 보물 소정’이라 불렀어요. 원석은 가공하지 않은 보석인데, 가공한 보석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주지요. 순수함의 극치, 무한한 가능성이랄까요. 근데 큰딸이 진짜 원석이 맞나봅니다. 큰 사위의 이름이 ‘고원석’이거든요.”
이 작품에서 소정씨는 흰색의 공주풍 드레스를 입고 있습니다. 소정씨가 어릴 때부터 유난히 흰색을 좋아한 데다 딸의 맑고 밝은 심성이 흰색과 많이 닮았기 때문에 흰 드레스로 만들었답니다. 드레스의 분위기가 약간 공주풍인 것에도 사연이 있습니다. “애가 어릴 때 진짜 공주처럼 귀하고 예쁘게 키웠습니다. 딸아이도 실제 초등학교 4학년까지는 자신이 공주인 줄 알았다고 했을 정도로요. 하지만 남편의 사업이 망하면서 딸도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도 삐뚤어지지 않고 공부를 잘해 능력있는 변리사까지 됐으니 진짜 공주가 맞지요.”
소정씨가 연둣빛 잎사귀를 품은 분홍색의 큰 꽃을 가슴 앞에 쥐고 있습니다. 이 작가에게 분홍과 연두는 생명, 밝음, 희망의 상징입니다. 힘든 생에서 딸이 희망을 주었다는 의미이지요. 두 딸이 아니었으면 그 힘든 삶의 여정을 그냥 포기해버리지 않았을까 하는 게 그의 생각입니다. 어려움을 견뎌내고 지금의 행복한 시간을 맞도록 해준 그 두 딸이 그래서 더욱 사랑스럽고 고맙다고 합니다. 딸들과 손주들의 환한 미소를 보면 그는 이 세상을 모두 얻은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받은 것을 나눠주고 비워내는 것이 이 땅에 사는 어머니로서의 또 다른 임무라는 생각도 한답니다.
그는 딸의 인물상을 만들 때 참 많이 행복했습니다. 도예를 하는 시간이 늘 좋지만 특히 사랑하는 사람을 만드는 인물상은 더더욱 즐거움을 준다는 설명입니다. 딸의 사진을 보면서 눈을 만들고 코를 오뚝하게 세울 때의 그 느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면서 딸의 모습을 좀 더 세밀하게 보고 딸과의 아름다운 추억도 더듬게 된다고 합니다.
흘러간 한국영화를 보거나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가끔 마주하는 대사가 있을 것입니다. “네가 맛있게 먹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 배는 부르단다.” 배고프던 시절, 하루 한 끼도 먹지 못했지만 그 귀한 밥을 자식이 한 숟가락 한 숟가락 입에 넣는 것을 보면 어머니는 절로 배가 부릅니다. ‘꼬르륵’ 하며 배에서는 밥 달라는 신호를 연신 보내지만 어머니의 배는 이미 사랑과 행복의 밥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지요. 아마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할 때 더 행복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도예가의 작품은 바로 이런 부모의 행복을 느끼게 합니다. 이것이 나만의 감정은 아니겠지요.
주말섹션부장 sykim@yeongn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