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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평론 보도

[김수영의 그림편지] 이경옥 도예가 作 ‘원석의 보물’ /2017-06-09 / 영남일보
아트코리아 | 조회 1,216

자식이 먹는 모습만 봐도 배부른 부모 마음 고스란히 담긴 인물상

 
 
#이경옥 도예가는 대구가톨릭대 공예디자인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개인전 11회를 열었으며 국제대회에서 다수의 입상 경력이 있다. 현재 대구가톨릭대 평생교육원 외래교수, 수성구 고산평생교육원 도예강사, 수성문화원 도예강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는 개인적으로 미국의 여성화가 ‘메리 케세트’(1844~1926)를 좋아합니다. 파리의 인상파운동에 직접 참가한 유일한 미국인이었던 그는 어머니와 아들을 중심으로 한 중류가정의 정경을 즐겨 그렸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부호의 딸로 태어나 미국에서 미술공부를 한 뒤 생애의 절반을 유럽에서 보냈고 일생을 독신으로 지냈지요. 인상파 특유의 따뜻하고 풍성한 이미지에 가족의 모습을 그린 그의 작품은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가슴이 따뜻해져 옵니다. 색채는 물론 그림의 내용이 주는 그 느낌이 바쁜 직장생활 속에 메말라버린 듯한 모성을 잠시나마 자극해서일까요.

이경옥 도예가는 2014년부터 가족을 비롯해 사랑하는 사람들의 인물상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도예가들처럼 다완, 항아리, 생활자기 등을 제작해왔는데 어느 날 문득 사랑하는 사람에게 귀한 선물을 해주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것이 바로 둘째딸 배민지씨(33)의 인물상이었습니다. 그 후로 손자, 외삼촌 등 가족은 물론 유달리 정이 많이 든 지인들의 인물상도 하나둘 만들어갔습니다.

올해는 첫째딸 배소정씨(38)의 인물상도 제작했습니다. 작은딸 인물상만 만들어 늘 가슴 한편이 헛헛했는데 과감히 큰딸의 인물상에 도전한 것입니다. 그 인물상을 보는 순간 큰딸의 모습이 참 아름답고 순수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딸 참 예쁘지요” 하며 휴대전화에 저장된 딸의 사진까지 보여주는 그는 ‘아름다운 딸바보’처럼 보였습니다. “변리사인데 애가 착하고 직장에서도 능력을 인정받고 있어요. 내 딸이지만 자랑스러워요.” 수줍어하는 모습으로 딸 자랑을 하는 그에게서 딸을 향한 진한 사랑이 느껴졌습니다. 그건 아마 나 역시 자식을 둔 부모이기 때문이겠지요. 전혀 밉지가 않고 그 모습에서 진정한 모성까지 강하게 전해졌습니다.

이 말 끝에 그 인물상의 제목에 대한 설명도 곁들였습니다. “내가 결혼 전 딸에게 항상 ‘원석의 보물 소정’이라 불렀어요. 원석은 가공하지 않은 보석인데, 가공한 보석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주지요. 순수함의 극치, 무한한 가능성이랄까요. 근데 큰딸이 진짜 원석이 맞나봅니다. 큰 사위의 이름이 ‘고원석’이거든요.”

이 작품에서 소정씨는 흰색의 공주풍 드레스를 입고 있습니다. 소정씨가 어릴 때부터 유난히 흰색을 좋아한 데다 딸의 맑고 밝은 심성이 흰색과 많이 닮았기 때문에 흰 드레스로 만들었답니다. 드레스의 분위기가 약간 공주풍인 것에도 사연이 있습니다. “애가 어릴 때 진짜 공주처럼 귀하고 예쁘게 키웠습니다. 딸아이도 실제 초등학교 4학년까지는 자신이 공주인 줄 알았다고 했을 정도로요. 하지만 남편의 사업이 망하면서 딸도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도 삐뚤어지지 않고 공부를 잘해 능력있는 변리사까지 됐으니 진짜 공주가 맞지요.”

소정씨가 연둣빛 잎사귀를 품은 분홍색의 큰 꽃을 가슴 앞에 쥐고 있습니다. 이 작가에게 분홍과 연두는 생명, 밝음, 희망의 상징입니다. 힘든 생에서 딸이 희망을 주었다는 의미이지요. 두 딸이 아니었으면 그 힘든 삶의 여정을 그냥 포기해버리지 않았을까 하는 게 그의 생각입니다. 어려움을 견뎌내고 지금의 행복한 시간을 맞도록 해준 그 두 딸이 그래서 더욱 사랑스럽고 고맙다고 합니다. 딸들과 손주들의 환한 미소를 보면 그는 이 세상을 모두 얻은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받은 것을 나눠주고 비워내는 것이 이 땅에 사는 어머니로서의 또 다른 임무라는 생각도 한답니다.

그는 딸의 인물상을 만들 때 참 많이 행복했습니다. 도예를 하는 시간이 늘 좋지만 특히 사랑하는 사람을 만드는 인물상은 더더욱 즐거움을 준다는 설명입니다. 딸의 사진을 보면서 눈을 만들고 코를 오뚝하게 세울 때의 그 느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면서 딸의 모습을 좀 더 세밀하게 보고 딸과의 아름다운 추억도 더듬게 된다고 합니다. 

흘러간 한국영화를 보거나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가끔 마주하는 대사가 있을 것입니다. “네가 맛있게 먹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 배는 부르단다.” 배고프던 시절, 하루 한 끼도 먹지 못했지만 그 귀한 밥을 자식이 한 숟가락 한 숟가락 입에 넣는 것을 보면 어머니는 절로 배가 부릅니다. ‘꼬르륵’ 하며 배에서는 밥 달라는 신호를 연신 보내지만 어머니의 배는 이미 사랑과 행복의 밥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지요. 아마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할 때 더 행복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도예가의 작품은 바로 이런 부모의 행복을 느끼게 합니다. 이것이 나만의 감정은 아니겠지요.

주말섹션부장 sy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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