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9    업데이트: 22-12-26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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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구락은 시간을 만지는 시인이다
이구락 | 조회 1,171
이구락은 시간을 만지는 시인이다. 그는 광대무변의 시간 앞에서 시간의 기원에 다다르려는 장대한 모험을 시도한다. 이 때 그는 대지의 은폐와 개진에 관여하는 성스러운 자세를 견지한다. 때로는 사제처럼, 때로는 고고학자처럼 오랜 기간에 걸쳐 그는 시간을 한 꺼풀씩 벗겨내는 경건한 의식을 감행한다. 이 때 오랜 사물에 배어있던 시간은 그 켜를 벗어내며 푸른 길과, 황금빛 모서리의 원초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그는 그 시간의 조각들인 친족들을 통해 지정의 세계를 탐색하면서 내면 깊숙이 가라앉아 있는 존재의 경험과 시적 욕망을 전이한다.
할아버지의 눈빛과, 봄 하늘 하얀 사기그릇 속 도포자락을 떠올리는 그의 시각이 예사롭지 않다. 이구락 시에 드러나는 이러한 다양한 시적 스펙트럼은 그가 우리 시사에서 드물게 사물과 인간을 하나로 아우르며 시간을 사유하면서 시간 속에 내재한 욕망을 읽어내는 남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손진은, 「사물의 시간, 인간의 시간」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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