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8    업데이트: 15-01-06 06:32

칼럼

모국어여 모국어여
이구락 | 조회 1,021

모국어여 모국어여

 

 

이구락 <시인>

 

 

 

「오오 그 날이 오면/겨울이 우리에게 가르쳐준/모든 언어, 모든 은유를 폐하리라 」 정희성의 시다. 이 시의 `겨울'의 상징성을 확대 해석하여, 취해서 비틀거리는 모국어의 원인과 현황을 나름대로 짐작해 본다.

 

첫째는, 권력의 언어 조작이다. 이 문제에 정공법으로 달려드는 것은 아무래도 문학, 그 중에서도 소설인 것 같다. 이청준의 「언어사회학 서설」연작에서부터 정찬의 「말의 탑」에 이르기까지 많은 소설이, 권력의 도구로 타락하여 사실의 은폐에 동원되는 언어의 불순함이나, 힘의 논리 사이에 끼여 본래의 의미가 수없이 굴절되고 덧칠되어지는 언어의 불결함 등를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권력과 언어, 문학과 정치의 상관관계가 돌이킬 수 없는 불구성을 드러내는 시대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늘 불신과 절망의 안개가 짙어, 추위타는 겨울이 계속될 뿐이다.

 

둘째는, 권력의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언어의 은어화이다. 나는 이것을「박노해 현상」으로 묶고 싶다. 어느 겨울, 시집 「노동의 새벽」을 들고 얼굴 없는 시인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 박노해는 지금도 온 국민의 호기심과 언론의 비상한 관심 속에서 얼굴 없이 왕성한 작품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이 어찌 익명의 시대가 아닌가. 운동권 은어를 비롯한 이 시대의 `줄여 말하기'도 마찬가지다. 광복 직후「건준(조선건국 준비위원회)」류에서부터 70년대의 「가투(가두투쟁)」류를 지나 80년대 초에는 이미 음어(陰語)의 상태에 이르고 있다. 나아가 「학생→스투(student)→에스(s)」에 이르면 암호나 부호의 경지다.「약(전략)」 「주사(주체사상)」같은 방어적이고 은폐적인 언어를 하루라도 빨리 밝은 햇살 아래 불러내어 봄바람으로 녹여주어야 한다.

 

셋째는, 앞의 두 유형 사이에 끼여 제멋대로 명멸하는 신조어들이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폐쇄성과 체념적이고 무비판적인 생활의식의 단면을 노출시키는 ,모국어 학대의 대표적 예들이다.「춤추나이(무용단)」「노찾사(노래를 찾는 사람들)」「백튜터퓨쳐(외화 제목)」「얼터너티브(대안)」등으로 오용 또는 남용되는 말이 버젓이 쓰여지고 있지 않은가. 더 이상 모국어를 학대하고 방치해서는 안 된다. 익명의 시대를 마감하고, 언어의 밝고 건강한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 모국어는 곧 우리의 정신인 동시에 우리들 삶의 겉모습이기도 하니까.

 

 

- 영남일보/칼럼(한소리)․8

덧글 0 개
덧글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