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8    업데이트: 15-01-06 06:32

칼럼

사진과 시
이구락 | 조회 984

             

  사진과 시

 

 

   이구락 <시인>

 

 

일찍이 보들레르는 사진의 예술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격렬한 혹평을 한 적이 있다.「사진 공업이 예술의 영역에 침입해 들어옴으로써 사진은 예술의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었다. ...이제 사진술은 본래의 구실로 돌아가야 할 때가 왔다. 그것은 과학이나 예술의 심부름꾼으로 돌아감을 뜻한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인쇄라든가 속기처럼 겸손한 심부름꾼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이들은 결코 문학작품을 창작한다거나 그 역할을 대신하려 하지를 않는다. ... 요컨대, 누구든 그 직업에 절대적인 진실의 정확함을 필요로 하는 사람의 비서라든가 서기의 역할을 하면 된다.」 이 말은 `사진공업은 모든 가짜화가와 재능 없는 화가의 피난처'라는, 당대 현실에 대한 혐오감에서 나온 보들레르다운 독설인 것 같다. 그러나, 오늘날 사진은 국경을 초월한 가장 완벽한 언어의 구실을 하고 있다. 미술이나 문학과의 유사성 때문에 예술로서의 사진은 이처럼 모욕적인 수난을 받아왔지만, 지금은 미술과 문학 사이에 위치한 독자적 예술 양식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사진으로 `개'를 찍을 수 없다」는 말은, 사진과 문학의 차이를 매우 효과적으로 지적한 말인 것 같다.어떤 개가 사진으로 찍히면 그것은 발발이나 진돗개 같은 구체적인 한 마리의 개일 뿐이다. 우리가 사전에서 읽듯 `개'라는 개념을 표현해낼 수는 없다는 뜻이다.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매체인 언어로써 작가의 생각이나 느낌을 구체적. 감각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문학의 `형상화'라면, 가장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매체를 가지고 작가의 추상적. 관념적인 개념 을 나타내는 것이 사진의 `영상화'이다. 사진과 시는 이렇게 상반되는 두 끝에서 마주보고 다가와, 독특한 아름다움으로 행복하게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요즘 나는 직장의 사우회를 따라다니며 사진에 입문하고 있는 중인데, 천성이 게으르고 또 문학을 하면서 외도를 하는 것 같아 계면쩍은 기분도 감출 수 없다. 하지만, 사진의 매력에 한 발 한 발 빠져드는 것 같다. 시와 사진 사이를 오락가락 하며, 나에게 있어서도 이 두 장르가 행복하게 만날 수 있을까를 저울질해 보기도 한다. 그러나, 어림없는 일이다. 하나도 벅찬 둔재임을 잠시 잊고 있었다. 지금의 욕심 같아서는 따라다니다 그런 대로 수수한 작품이라도 몇 점 만나게 되면 시사전(詩寫展)이라도 한번 열어보는 것도 괜찮을까?

 

- 영남일보/칼럼(한소리)․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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