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8    업데이트: 15-01-06 06:32

칼럼

누가 역사를 두려워 하랴
이구락 | 조회 893

누가 역사를 두려워 하랴

 

 

이구락(시인)

 

작년 11월 하순경, 한겨레신문의 고정 칼럼란에는 그 신문 논설위원이 쓴「역사의 법정과 현실의 법정」이라는 글이 실려 있었다. 공안(시국)사범이 급증한 현실에서 그는「우리 나라의 경우 `역사의 법정'이 과연 존재하는가」와「`현실의 법정'과 `역사의 법정'이 언제까지 따로 존재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두 가지 질문을 하고 있다. 그는 또 스스로 대답하기를, 「오늘날 우리 민족이 분단과 독재에 신음하고 있는 것도 바로 8.15 직후 친일반민족 분자들에 대한 역사적 심판을 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단정하고, 두 번째 대답도 「`현실의 법정'과 `역사의 법정'의 괴리 문제는 `현실의 법정'이 `역사의 법정' 쪽으로 거리를 좁혀가야 한다.」고 했다. 또, 개인적이란 단서를 달며, 그는 「우리의 경우 `역사의 법정'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단정하고, 그 결과 「누가 `역사'를 두려워하겠는가?」라고 시니컬하게 표현했다.

 

이 단순 명료한 칼럼을 읽고 공감하지 못할 한국인이 몇이나 될까. 문득 작년 후반기, 우리들을 뒤흔들어 놓고 감쪽같이 역사의 장으로 넘어가 버린「쇠기름 파동」이 떠오른다. 지면 관계상 마무리 수순만 되짚어 보자. 검찰은 처음 「폐수를 정수해도 수돗물로 사용할 수 없는 것처럼 공업용 쇠기름은 아무리 정제해도 해로운 것」이라고 공언하며 식품회사 간부들을 대량 구속하였다가 마지막에는, 기소 대상이 「완제품이 아니라 원료인 비식용 수입 쇠기름일 뿐」이라고 계면쩍게 변명했다. 보사부는 `식품위생검사 소위원회'가 무해판정을 내렸다고 매우 당당하게 발표했다. 또, 사건 당사자인 식품회사는「잘못된 것은 없지만 앞으로 공업용 쇠기름은 쓰지 않겠다」는 홍보용 광고를 당연하다는 듯 떳떳하게 내었다. 그리고, 언론 또한 착하게도 `80년대 10대 사건'으로 깨끗이 역사의 장으로 넘겨 스크랩해 버렸다.

 

문제는 유해냐 무해냐가 아니라, 늘 그래왔듯이 이 엄청난 사건에도 책임을 진 사람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때의 국민 감정은 보사부와 검찰 가운데 어느 한 쪽은 분명히 국민을 속이고 있다는 기분이었다. 우리는 매사에 늘 이런 식으로 매듭을 지으며 살아왔다. 양심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사회, 자기 일에 책임질 줄 아는 정직한 사회, 체면이나 타협보다 윤리가 항상 우위에 있는 사회가 되지 않으면, 그렇다, 과연 누가 역사를 두려워하랴.

 

 

 

- 영남일보/칼(한소리)․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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