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8    업데이트: 15-01-06 06:32

칼럼

표정에 대하여
이구락 | 조회 841

     표정에 대하여

 

 

       이구락(시인)

 

 

`표정'이란 마음속의 감정, 정서를 외모(얼굴)에 드러내어 나타냄을 뜻하는 말이다. 그리고 표정이 잘 나타나는 부분은 얼굴 중에서도 특히 입과 눈이다. 입에 나타난 표정이 동적이라면, 눈에 나타난 표정은 정적이다. 둘 중에서도 눈빛이야말로 표정의 가장 완벽한 예술이며,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형이상학이다. 그래서 흔히들,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했던가.

 

문득 재작년의 올림픽이 떠오른다. 스탠드의 관중처럼 들뜨지 못하는(관중이라고 해서 다 들뜬 것은 아닐 테지만) 나 자신을 나무래 가면서도 그 숱한 시상식 장면에 매료되었다. 미국으로 대표되는 서구 젊은이들의 경박함에 가까운 당당하고 유쾌한 표정과 소련으로 대표되는 북, 동구 젊은이들의 무표정에 가까운 창백하고 조용한 우수 어린 표정이 자꾸 보고 싶어서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낯익은 서구의 얼굴보다 표정 없는 북구의 얼굴이 신선했다. 그 우수에 찬 표정에서 `죄와 벌'의 라스꼴리니꼬프나 쏘냐를 연상하기도 했지만, 경박함이나 속물스러움이 없어 좋았다. 그들의 눈빛에는 동구의 눈 덮인 침엽수림 같은 정적인 강인함이 항상 어려 있었다.

 

`동국세시기'나 성현의 `용재총화'같은 옛글을 읽어나가다 보면, 선인들의 넉넉한 삶과 그분들의 지혜롭고 익살스러운 행동거지에 웃음이 절로 일 때가 많다. 그분들의 눈빛은 어떠했을까. 늘 따뜻하고 잔잔하다가도 위기에 처하면 슬기롭게 반짝이고 불의 앞에서는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지 않았을까. 그 숱한 전란과 내분 속에서도, 약은 눈빛이나 비굴한 눈빛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그것은 아마도 유학과 불교정신이 의식의 밑바닥에 곱게 침전되어 있고, 사계가 뚜렷한 반도인의 낙천적 기질이 아닐까 짐작되기도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가치관이나 인생관 같은 삶의 질, 문화의 질일 것 같다.

 

그럼, 오늘날 우리들의 표정은 어떠할까. 지구촌의 모든 나라가 서구화되어 가는 경향이지만, 우리의 템포가 유독 빠른 것 같다. 또한 우리는 과거의 그 어느 때보다도 지독한 시련, 일제와 6.25와 군사독재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고 있는 중이다.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겠지만 약은 눈빛, 비굴한 눈빛, 초조한 눈빛, 아집에 가득 찬 눈빛이 자꾸만 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진정한 우리의 눈빛은 이런 것이 아닐 텐 데도 말이다.

 

영남일보/칼럼(한소리)․5

덧글 0 개
덧글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