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8    업데이트: 15-01-06 06:32

칼럼

새해를 맞으며
이구락 | 조회 850

 

새해를 맞으며

 

이구락 (시인)

 

해가 바뀐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의미롭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저 인간이 만들어 놓은 시간의 한 단락에 불과하기도 하다. 우리는 매년 새해를 맞으며 얼마나 많은 꿈과 새로운 다짐을 해 왔던가. 연말이 되어 한 해를 돌이켜 생각해 보면, 또 얼마나 부질없는 삶을 머뭇거리며 살아왔던가. 새해를 맞는다는 것은 그러므로 시간의 한 단락에 마침표를 찍으며 새로운 시작을 조심스럽게 해야한다는 의미이다. 잉크냄새 풍기는 새 달력을 걸며 `새해 새 아침!'하고 나직이 읊조려보지만, 올해에도 우리는 또 얼마나 자주 절망의 뿌리까지 하얗게 드러내어야 할지.

 

4년 전인 86년 새해 한 문학지의 <시인의 연하장>이란 기획물에 나는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다음과 같은 구절을 쓴 적이 있다. "나는 올해 연필로 시를 쓸 작정이오. 박형처럼 철저히 그리움은 감추고, 부끄러움은 드러내며 말이오. 또한, 열심히 지우고 과감히 지우겠소. 그리고 기다리겠소. 겸허하게 몸을 낮추고, 고여서 넘칠 때까지."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해 중반에 시집을 묶어내고는 그 후 2년 반 동안 시를 쓰지 못했다. 89년에 들어와서야 겨우 다시 쓰기 시작했지만, 그것도 10 편을 채우지 못한 양이고 내용도 많이 풀어진 것 같다. 다시 말하자면, 그 동안 나는 고여서 넘칠 때까지 겸허하게 몸을 낮추고 지낸 것이 아니라, 그냥 바람처럼 허망하게 아니면 흐르는 물처럼 세월에 떠밀려 여기까지 흘러와 버렸다. 지난 연말 한 출판기념회에 참석하여 큰 충격을 받은 것도 바로 이 공백 때문이었다. 주로 젊은 문인들이 모인 자리였는데 낯선 사람이 절반 가량이나 되었다. 그들은 대부분 내가 칩거(?)한 동안에 등단한 사람들이었다. 시간의 흐름이 그토록 무섭게 느껴지기는 처음이었다. 이 막막한 공백을 나는 앞으로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

 

내 시에 혹 도움이 될까 싶어 서둘러 컴퓨터를 구입하기도 하면서, 다소 야단스럽게 새해를 맞이했다. 그리고 컴퓨터로 시가 아닌 이 짧은 잡문을 쓰면서 다시 출발한다. 90년대의 들판을 나는 어떤 모습으로 건너가게 될까 두렵지만 어쨌든 90년 새 아침은 이미 밝았다. 새로운 희망을 위하여 축배를!

 

 

- 영남일보/칼럼(한소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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