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8    업데이트: 15-01-06 06:32

칼럼

상대적 빈곤의 시대
이구락 | 조회 804

 

상대적 빈곤의 시대

 

李 九 洛 <시인>

 

가진 자의 자유와 사치는 대다수의 가지지 못한 평범한 보통사람들의 피땀 위에 세워진다. 그리고 그것은 늘 높은 담장 속에 있으므로 더욱 눈부시고 현란한 세계이다. 오늘의 우리 현실은 언제부터인가, 남루 속에서나마 고단한 꿈을 꿀 수 있는 건강성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自淨 능력을 잃고, 입원해야 할 중환자가 되어버렸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기름에 불 지르듯, 아파트 열기와 물가급등이 재연되던 작년인가 재작년쯤에 어느 술자리에서 들은 일화가 문득 떠오른다.

 

좌중의 한 분이 세탁소에 들러 세탁비가 100%나 인상되었다는 말을 듣고, 투덜거리며 좀 깎자고 했더니 주인이 웃으며 그냥 가져가라고 하더란다. 놀란 표정을 짓자, 세탁소 주인은 이제 돈 모을 마음이 없으며, 열심히 일해 봤자 뛰는 전세값도 마련하기 어려우니 그냥 되는 대로 살겠다고 덧붙여 말하더라고 했다. 누가 언제부터 이 세탁소 주인을 중증의 자학증환자로 만들었는가.

 

우리 이웃들에 전염병처럼 만연된, 이 무서운 증상은 참으로 난감하지만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 같다. 절대적 빈곤이 사라지지 않은 상태이지만, 그러나, 정말 우리를 절망시키는 것은 상대적 빈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가진 자들의 투기가 근로자들의 근로의욕 상실을 초래하고, 막노동자까지 자동차 구입 등 과소비로 치닫고 있다. 이쯤 되면 이제 우리 모두가, 좋든 싫든 과소비의 물결을 비껴갈 수 없게끔 되어 버렸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형태의 소비문화가 형성되어 가는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 비열한 범죄가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있고, 따라갈 수 없는 자들은 의욕상실증 환자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상대적으로 가진 자들의 고뇌가 너무나 돋보이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아파트회사는 신축부지에 깃발만 꽂아놓고도 돈을 벌고, 그것도 모자라 주택상환사채라는 것까지 발행할 수 있게 되었다. 자동차회사는 고객에게 상품의 탁송료를 물리고 새 차의 도색료를 부담시켜도 된다. 의료보험료까지 거의 모든 세제가 더 가진 자일수록 상대적으로 부담이 낮다. 또한, 금융실명제나 토지공개념, 재벌의 비업무용 부동산 규제도 같은 예라 할 수 있다. 이 시대에 통용되는 이 윤리가 정의롭고 타당할 수는 없다. 하나뿐인 우리의 조국이 가진 자의 천국이 되도록, 정부는 계속 보고만 있을 것인가.

 

 

- 매일신문/칼럼(매일춘추) ․ (1990.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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