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8    업데이트: 15-01-06 06:32

칼럼

옹기문화의 부활
이구락 | 조회 859

 

옹기문화의 부활

 

李 九 洛 <詩人>

 

지난 11월 서울 덕수궁 함녕전에서는 「옹기문화 큰잔치」라는 전시회가 열렸던 모양이다. 고대토기에서 오늘날의 스탠드까지, 특히 옛것은 방안이나 부엌 등에서 쓰이던 옛 모습대로 재현시키고 또 전시 기간 중 옹기의 조형미나 실용성, 과학적 우수성 등을 짚어보는 학술적인 세미나도 가졌다고 한다. 참으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옹기는 그 투박한 질감 속에 은근하고 넉넉한 멋을 풍기며 우리 민족의 역사와 애환을 고스란히 담아온 가장 대표적인 생활도구였다. 옹기는 유물이 아니라 아직도 우리 생활의 외진 모서리에서 외롭게 잊혀져가며 그러나 묵묵히 놓여 있다. 숨 쉬는 기능까지 가진 신비로운 옹기는 장독대문화를 형성하여 우리의 식생활을 풍요롭게 해주었다. 장독대에 오순도순 모여앉은 옹기는 저장기구로서, 된장 고추장 김치 젓갈 술 등의 독특한 발효식품을 낳아 식생활의 수준과 삶의 질을 꾸준히 높여왔다. 

 

질그릇 오지그릇 사기그릇의 총칭을 도자기라 하지만 도자기문화를 얘기할 때 우리는 주로 자기(사기그릇)만을 우리 민족의 대표적 예술품으로 배워 왔다. 고려의 청자와 조선의 백자로 대표되는 자기문화는 이른바 양반문화라 할 수 있다. 이 귀족적인 양반문화는 분명 옹기보다 공예성이나 예술성이 뛰어난 것임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자기(瓷器)만이 민족문화를 대표한다고 고집하지 말자. 섬세하고 현란한 귀족문화를 자세히 바라보고 있으면, 그 속에는 권력자의 독선과 오만 그리고 사치와 부패의 냄새가 묻어 있다. 또한 그것을 묵묵히 만들어 낸 천민들의 땀과 눈물도 얼비쳐진다.

 

말없이 이 땅에 살다간 대다수 민중들이 이룩해놓은 옹기문화는 민족문화를 떠받치고 있는 튼튼한 기층문화다. 민중들의 삶을 대표해온, 생활예술품인 이 옹기(질그릇과 도기인 오지그릇)를 무시하고 우리는 이제까지 민족문화를 논해온 것 같다. 이 비뚤어진 문화관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그것은 오랜 봉건구조와 교활한 일제 식민지정책이 그 주된 원인이고, 성실한 반성 없이 식민지사관에 젖어 이루어진 광복 이후의 교육이 또한 한 몫의 책임을 나누어 가져야 하리라. 민중이 자신들의 문화에 깊은 애착과 높은 자긍심을 가질 때 비로소 떳떳한 문화민족이 되지 않을까.

 

- 매일신문/칼럼(매일춘추) ․ (1990. 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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