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8    업데이트: 15-01-06 06:32

칼럼

안면도의 분노
이구락 | 조회 788

              

安眠島의 분노

 

李 九 洛<시인>

 

소련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참사 4주년이었던 금년 4월 26일자 신문에서 본 외신사진 한 장. 일그러진 코와 심한 언청이의 얼굴을 쳐들고 엎드려 있는 어린애의 천진한 눈망울이 도무지 잊혀지지 않는다. 그 큰 눈망울 속에, 최근 격렬한 반핵 시위 후 첫눈이 내린 아침 경운기를 타고 등교하는 안면도 어린이 의 사진이 겹쳐진다. 앞의 것은 핵의 비극적인 결과이고, 뒤의 것은 핵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이 흰눈처럼 내려앉아 있는 사진이었다. 임신부들 사이에 낙태가 성행하는 체르노빌은 이제 지명이 아니라 핵문제의 한 상징어가 되어 버렸다.

 

「체르노빌」은 앞으로도 오래오래 끝나지 않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희귀동물들이 자연보호에 막강한 힘을 발하고 있다고 한다. 네바다주 마자브 사막의 개발사업이 멸종위기에 놓인 거북이 때문에 중단되고, 애리조나주 그래함 산꼭대기의 가문비나무에 사는 약 1백 마리의 붉은 다람쥐의 보호 때문에 미국의회는 세계 최대의 천문대 건설을 지연시켜 결국 계획 자체를 포기하게 만들었다. 부러운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우리의 사정은 아직 걸음마 단계이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 정도도 못된다는 느낌이다. 환경처가 생겼지만, 환경보전 업무는 14개 부처에 골고루(?) 흩어 져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자생적인 환경보호 단체가 없는 것은 아니다.「공해추방운동연합」「한국반핵반공해평화연구소」「부산공해추방 시민운동협의회」「광주환경공해연구회」등이 눈에 띄며, 특히「자연과 환경을 위한 공동회의」라는 단체가 25인의 전문가로 결성되었다는 기사를 보고는 이제 우 리도 제대로 되어가는구나 싶었다. 그러나 이번 안면도 사태 때 어느 지면에서도 이들 단체의 목소리는 내비치지 않았다. 그저 현지주민들이 내 고장 지키기 차원에서 결사반대를 했을 뿐이다.

 

지극히 당연한 얘기지만, 이제 당국은 환경문제를 공개적으로 고민해야 하며, 환경보전이 개발에 우선되어야 한다. 또한, 민간단체나 국민들도 이제 적극적인 자세로 정부의 고민을 함께 앓으며 끊임없는 견제와 대안을 찾아내어 실천해 야 할 시점이 된 것 같다.지서가 불타고 대규모의 경찰이 진주하는, 전쟁을 방불케 한 안면도 사태는 앞으로 언제 어디서나 재연될 소지를 남겨놓고 있다. 미국의 그래함 산에 붉은 다람쥐가 있듯이, 우리의 안면도에는 모감주나무가 있지 않는가. 안면도의 분노는 지극히 당연하다.

 

- 매일신문/칼럼(매일춘추) ․ (1990. 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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