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8    업데이트: 15-01-06 06:32

칼럼

스포츠 내셔널리즘
이구락 | 조회 742

       

스포츠 내셔널리즘

 

李 九 洛 <詩人>

 

북경아시아경기대회의 열기가 남북축구로 이어지더니 다시 프로야구 한국시리즈로 이어지며 우리의 10월은 저물어 간다. 문화의 달 10월, 그 숱한 문화행사에 한번도 참가해보지 못한 이 땅의 대다수 사람들도 텔레비전 수상기 앞에 앉아, 울긋불긋 다양한 감정을 느껴보았을 것이다. 언제부턴가 우리의 일상 속에 스포츠는 물이나 공기 같은 것이 되어 버렸다. 조용하던 겨울철까지도 실내경기가 뿌리내리고, 심지어 명절날 제사상 옆에서도 스포츠 중계방송은 계속된다.

 

스포츠의 국제적 추세 또한 걷잡을 수 없이 거칠어지고(?) 있다. 정치 체제와 이데올로기를 초월한 세계평화의 제전이라 일컫는 올림픽도 아마추어리즘 고수, 정치성 배제, 상업주의 배제의 3원칙을 모두 포기해 버렸다. 국제올림픽위원회는 지난달 올림픽헌장을 개정하여 프로선수들의 참가를 허용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제 스포츠의 윤리적 교육적 가치나 깨끗한 스포츠맨십은 더 이상 돋보이지 않을 것 같다. 깨끗한 경기보다 이기고 보는 경기, 체제와 인종을 초월한 화합보다 메달로 상징되는 국력의 대결로 치달을 것이다.

 

그럼, 아직도 과연 `체력은 국력'일까.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막판에 우리가 일본을 제치고 2위를 했다고 해서 우리의 국력이 일본을 앞지른다고 믿는 이가 있을까. 또 중국이 대국답지 못하게 제멋대로 종목을 조정해서 금메달을 휩쓴 것이 1위가 위험해서거나 국력콤플렉스 때문이었을까. 그렇지 않다면, 스포츠 외의 어떤 동기가 있을 것이며, 그 동기는 다분히 불순할 수밖에 없다. 중국의 경우, 지난해 천안문사태로 실추된 국제사회에서의 위신과 흔들리는 민심이 이번 대회에 작용되었을 것임은 쉽게 짐작된다.

 

우리의 경우는 어떠한가. 아니, 괜찮게(?) 사는 나라들도 우리처럼 태릉선수촌 같은 시설에서 오랫동안 집단 합숙훈련을 하는지, 메달에 대한 연금과 보상금이 우리처럼 완벽한지,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수업을 뒷전에 미루고 기교적 훈련에 전념하는지 궁금하다. 스포츠에 쏟아붓는 그 엄청난 돈은 국력의 신장인가, 아니면 국력의 낭비인가. 유신시절부터 그 돈을 조금 나누어 사회체육과 문화예술에 투자했다면 우리의 삶은 지금보다는 훨씬 활기차고 정돈되어 있지 않을까. 스포츠가 아편이 되지 않기 위해, 또한 국력의 낭비가 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이제 우리의 삶의 질을 곰곰이 따져볼 시점에 온 것 같다.

 

- 매일신문/칼럼(매일춘추) ․ (1990.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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