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여자
이구락
그 여자 내 옆에 있었네
은해사 대웅전 앞 키 큰 파초 아래
큰 키로 서서,
그 여자 눈부셨네
창 밖을 내다보는 게 유일한 취미며
그러다 저녁 어스름 내리면
거리를 무작정 걸어다니는 게 버릇이라는,
긴 머리카락 왼쪽으로 쏠릴 때
속마음의 갈피에서
커피향 같은 나른함 언뜻언뜻 묻어 나던,
벼이삭 누릿누릿 익어 가는 귀로
현홍들 불태우는 저녁놀 바라보다
갑자기 침묵 속으로 자부룩 가라앉던,
그 여자
멀리서 보면 환한 파초 잎 같고
가까이서 보면 저녁 어스름 같은
그 여자, 내 앞에 있었네
그 여자 옆에서 난 쓸쓸해지는 법 배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