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7    업데이트: 15-02-23 13:12

그 해 가을

놉 시장市場
이구락 | 조회 783

놉 시장市場


                                              이 구 락


제기랄, 오늘도 날 궂으니 공치겠군.
술취한 도시가 아랫도리 벌린 채 곯아떨어진
새벽 4시, 최씨는 밤새 고인 가래 아스팔트에 뱉으며
잔뜩 목을 움츠리고 걷는다.
마누라는 오늘도 다친 허리 도져 쉬어야 하니
혼자 놉 시장으로 나가는 최씨의 발길은 우중충하다.
저만큼 모닥불이 비치고 불가를 서성이는 검은 그림자
그렇지 저 불빛, 고향생각 나는군.
횃불 비춰들고 어둠 향해 초망 던지면 하얗게
하얗게 걸려들던 여울의 은어떼, 모닥불 가의 술추렴.
제기랄, 최씨는 조금 엷어진 동녘 하늘
힐끗 쳐다보고, 두 손을 호주머니 깊숙이 찔러 넣는다.
새벽장에서 허탕치는 품팔이꾼 날로 늘어가니
최고 일당의 기대보다 허탕이 더 무서운 요즘
늘 돈내기 일을 원하지만
쉰 넘은 최씨에게는 낮일도 하늘의 별따기.
운 좋게 몸을 판 젊은이가 휘파람 불며
최씨 옆을 지나간다. 저 기우뚱한 걸음걸이,
최씨는 문득 죽은 맏아들 얼굴 떠올린다.
그래, 녀석이 대학 입학할 때만 해도 곧 무엇이
될 것 같았지. 자식새끼 위해 고향 등질 때
시오리 황톳길, 풀섶의 아침이슬도 발목 잡았지만
그래도 보릿고개 없는 도시가 무지개처럼 환했지.
엿 같은 놈의 세상, 치미는 울화 콱 가래로 뱉어내고
최씨는 웅성거리는 쪽으로 다가간다.
최씨의 어깨 너머 동녘이 좀더 환해지고
포장마차 김씨는 팔팔 끓는 우동국물 들여다보며
연신 하품을 한다. 육교 밑으로 바람 한 줄기
구겨진 신문지 굴리며 빠르게 지나가고
최씨는 또 노오란 마누라 얼굴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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