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7    업데이트: 15-02-23 13:12

그 해 가을

그 해 가을
이구락 | 조회 867

그 해 가을 

 

                                  이 구 락


노을에 젖은 고로쇠나무 지나
사람들은 바람 속을 굳은 얼굴로 지나갔다
이웃이 집을 짓고 겨울채비를 하고
더러는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동안
나는 가을 속으로 깊이 깊이 들어갔다
까닭없이 몸이 아파왔다
열이 내리면 횃불 같기도 하고 사랑 같기도 한
가을앓이, 행간 사이로
부질없는 송신의 밤이 끊임없이 지나갔다
잠시 반짝이던, 때묻은 희망의 새벽 지나
야윈 햇살 아래 내려서니
고로쇠나무는 잎을 모두 버리고
좀 더 나이든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제
문 앞에 나와 석간을 기다리지 않았다
다시 행간 사이 자욱한 노을이 지고
오리무중의 수상한 잠 속으로
나는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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