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242    업데이트: 24-04-23 14:09

매일신문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정학교(1832~1914) '송무석수'
아트코리아 | 조회 303

비단에 담채, 30×41.5㎝, 개인 소장

19세기에 이르러 괴석화가 하나의 장르가 되었을 때, 괴석을 전문적으로 그려 '정괴석'으로 불렸던 화가가 몽인(夢人) 정학교이다. 전서, 예서, 초서 등 글씨도 잘 썼는데, 수성구 지산동 중화 양씨 재실에 정학교의 '학산재(鶴山齋)' 편액이 걸려 있다. 그의 아들 정대유(1852-1927)도 선업(先業)을 이어 그림과 글씨를 잘한 서화가 집안이다.

정대유의 호는 우향(又香)인데 아버지가 처음에 사용한 호 향수(香壽)에서 '향'자를 따 '나도 향(香)'이라고 한 것이다. 호 중에는 아버지나 스승의 호에서 한 글자를 가져오는 경우도 있다. 부자지간의 호로 하정(荷汀)과 우하(又荷), 소남(小南)과 우남(又南), 일송(一松)과 우송(又松), 자하(紫霞)와 소하(小霞), 하정(霞亭)과 소하(小霞), 금남(錦南)과 소남(小南), 퇴산(退山)과 모산(慕山) 등이 있다. 정학교는 일자무식이었다고 하는 오원 장승업의 그림에 화제를 대필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정대유도 아버지를 이어 장승업의 그림에 화제를 남겼고 근대기 미술학교인 서화미술회 강습소에서 서예를 가르쳤다.[close]1907년 정학교가 76세 때 그린 '송무석수(松茂石壽)'는 괴석을 그렸지만 원래의 괴석화와 두 가지가 다르다. 첫째는 문인화의 분위기가 있지만 섬세하고 정밀한 묘사적 필치와 세련된 채색으로 근대적 감각의 조형미 있는 회화라는 점이고, 둘째는 괴석과 소나무를 함께 그리며 "소나무처럼 무성하게, 바위처럼 오래오래 사시기를"이라는 제목으로 축수(祝壽)의 뜻을 뚜렷하게 밝혀 놓은 길상화라는 점이다. 마치 한 쌍의 남녀가 마주 보듯 그려진 소나무와 돌은 모두 장수를 상징하는 십장생이다.

북송 때 화론인 『임천고치(林泉高致)』(1117년)에 '석자(石者) 천지지(天地之) 골야(骨也)', 곧 "돌은 천지의 뼈다"라는 말이 나온다. 나무는 춘하추동에 따라 모습이 바뀌고, 산의 흙도 비바람에 쌓였다 흩어졌다 하지만, 바위는 변하지도 움직이지도 않는다. 원래 괴석화는 자연의 불변성, 부동성이라는 추상적 이념을 바탕으로 보통사람들이 아름답다고 여기지 않는 것에서 미적인 것을 발견해 추미(醜美)를 미(美)로 인식하는 지식층의 독특한 심미의식에서 나온 장르이다. 아무나 즐길 수 없는 취향이다.

그런데 중국에서 전해진 괴석 취미가 많은 공감을 얻으면서 천연의 조각품인 돌을 사랑하는 애석(愛石)으로 확장되고 장수 기원이 첨가되어 수석(壽石)과 길상화로 애호되었다. 원래의 괴석이 나타내는 차별적 취향이라는 멋짐에 장수 기원의 실익이 더해진 것이다. 감상용 자연석을 중국에서는 기석(奇石), 공석(供石), 청공석(淸供石)으로, 일본에서는 수석(水石)으로 부른다.

호에 넣는 글자로 돌 석(石)가 단연 많은 것도 불변부동 한 돌의 속성을 닮고 싶고, 또 석수만년(石壽萬年)의 돌처럼 세상에서의 삶을 오래 누리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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