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238    업데이트: 24-03-26 13:33

매일신문

[이인숙의 옛 그림 예찬] 김홍도(1745-?), ‘관폭도(觀瀑圖)’
아트코리아 | 조회 129
미술사 연구자


종이에 수묵, 20×30㎝, 개인 소장

단원 김홍도의 '관폭도'이다. 그러나 폭포는 어렴풋한 느낌으로 전달할 뿐 묘사하지 않았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암벽에 거꾸로 드리운 잡목의 마른 나뭇가지와 허공으로 뻗친 몇 그루 대나무이다. 언덕에 앉아 폭포를 바라보는 인물 또한 지극히 생략적인 필치의 몇 가닥 선으로 나타냈다.

김홍도가 50대 중반의 무르익은 솜씨를 이렇게 간일(簡逸)한 문인화풍으로 구사한 이유는 이 그림이 서예작품 11점과 함께 구성된 서화합벽첩(書畵合璧帖)의 한 면이기 때문이다. '관폭도'는 김홍도의 작품 중에서 비슷한 예를 찾기 어려운 문기(文氣) 어린 필치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각별하다.

겸재 정선과 47년의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망년지교를 맺었던 조선 후기 그림 애호가 정지순은 "무적이취(無迹而就) 불가묵이시(不假墨而施)"라고 했다. 당시 사대부들이 좋아한 그림의 유형을 말해준다. "붓의 자취가 없어도 그림의 경지가 이루어지고, 먹을 빌리지 않고 경치가 베풀어진다"는 것은 이 '관폭도'처럼 여백으로 완성되는 차원의 그림을 말하는 것 같다.

합벽첩은 18세기에 그림과 글씨를 애호하는 문화가 널리 퍼지자 명시를 쓴 서예가의 글씨와 화가의 그림을 함께 첩으로 만들어 시서화를 동시에 감상하고 소장하려는 의도에서 나왔다. 합벽첩은 시를 선정하는 안목과 참여할 서예가와 화가의 협업을 이끌어낼 수 있는 누군가의 기획에 의해 탄생한 융합적인 창작물이다. '관폭도'는 모두 펼치면 길이가 4미터 20센티에 달하는 거작인 '병암진장첩(屛巖珍藏帖)'의 한 면이다.

이 합벽첩의 맨 앞에 김홍도의 '관폭도'가 있고 이어서 전서, 예서, 해서, 행서, 초서 등 각체로 쓴 시를 배치했고 마지막에 김홍도의 그림 한 점이 더 있다. 시는 널리 애송되던 중국 남송의 유학자 주희의 시이고, 서예가는 유한지와 홍의영이다. 최고 고수들이 완성한 글씨와 그림에 당대의 명사 김이도의 평문까지 붙여 명품의 격을 더욱 높였다. 김이도는 이 서화첩을 삼공(三公) 즉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의 벼슬과도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관폭도'의 문인화풍에는 이런 배경이 있다.

폭포 구경은 다산 정약용이 권한 더위를 가시게 하는 '소서팔사(消暑八事)' 중 하나다. 관폭, 청폭(聽瀑)이 즐겨 그려졌던 것은 피서의 목적이었다기보다 폭포의 직하하는 물줄기와 새파란 소리에서 '고매한 정신'을 보았기 때문이다. 화면 속 고사(高士)가 바라보는 것은 김수영(1921-1968)이 시 '폭포'에서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 고매한 정신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라고 했던 그 정신이다. 지난여름의 폭포는 더위만 물리친 게 아니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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