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240    업데이트: 24-04-08 14:11

매일신문

[이인숙의 옛 그림 예찬] 강세황(1713-1791), ‘청공도(淸供圖)’
아트코리아 | 조회 185
미술사 연구자



[비단에 담채, 23.3×39.5㎝, 선문대학교박물관 소장]

책상이 무척 길쭉한 것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조선 후기 시서화 삼절 강세황의 책상은 요즘의 학자들 책상만큼이나 크다. 그가 서예가이자 화가여서 책상이 작업대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강세황의 수 미터짜리 화첩, 두루마리가 여러 점 전한다. 그렇게 글씨도 쓰고 그림도 그리자면 독서용 서안(書案)보다 커야 해서 소목장(小木匠)을 불러 따로 맞추었을 것이다.

책상 위에는 백지도 펼쳐져 있고 읽던 책도 한 권, 물을 뜨는 작은 스푼이 걸쳐져 있는 고식(古式) 연적인 수증승(水中丞), 붓 다섯 자루가 나란히 꽂힌 필통, 연지(硯池)가 깊은 두툼한 벼루, 포갑(包匣)된 중국책 3질이 있다. 벼루는 격조 있게 벼루받침인 연대(硯臺) 위에 올려놓았다. 괴석과 매화를 심은 화분도 따로 받침대를 맞추었다.

책상 오른쪽 끄트머리에 여의(如意)가 놓여 있고 바닥에는 산책을 위한 지팡이가 있다. 특이한 모양새인 여의(如意)는 흔한 물건은 아니다. 애초에는 '뜻대로'라는 이름처럼 손이 안 닿는 등이 가려울 때 긁는 효자손 같은 실용품이었으나 점차 길상여의(吉祥如意), 만사여의(萬事如意), 사사여의(事事如意) 등 상서로운 뜻이 더해지며 옆에 두면 마치 내 뜻대로 될 것만 같은 장식용, 감상용 물건이 되었다.

강세황의 여의는 나무로 만든 목여의였다. 여의를 만들 때 지은 시 '신조목여의(新造木如意)'를 보면 그가 여의를 쓰다듬으며 한탄한 가장 여의치 않은 일은 늙음이다.

여의신성여아의(如意新成如我意) 여의가 내 뜻대로 새로 만들어져

종조무완불능휴(終朝撫玩不能休) 아침 내내 어루만지기를 그칠 수 없네

불여의사감두백(不如意思堪頭白) 뜻대로 안 되는 일은 머리가 희어지는 것인데

여의여하야백두(如意如何也白頭) 여의도 어찌하여 머리 부분이 희단 말인가

화제는 "무한경루(無限景樓) 청공지도(淸供之圖)"라고 했다. 표옹(豹翁)으로 서명하고 자를 새긴 인장 '광지(光之)'를 찍었다. 무한경루는 강세황이 60대 이후 벼슬길에 들어서며 서울 남산에 마련한 집이다. '청공'은 "맑은 생활에 이바지하는 물건"이다. 특별한 완상품이 아니라 책상 위 서재의 세간을 그렸고 청공품은 여의와 화분뿐이다. 강세황 세대만 해도 수입산 고동기(古銅器)나 값비싼 도자기 등 골동품이 아니라 문방구 자체를 제일가는 청공으로 여겼던 것 같다.

강세황은 '청공도'로 자신의 책상을 자랑스럽게 소개한다. 책상은 공부하는 사람의 생활이자 그의 우주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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