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242    업데이트: 24-04-23 14:09

매일신문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장우성(1912-2005), ‘연꽃’
아트코리아 | 조회 218
미술사 연구자


종이에 담채, 30.5×53㎝, 개인 소장

오늘은 음력 6월 24일, 올해도 찾아온 연꽃이 만발하는 하화생일(荷花生日)이다. 장우성의 '연꽃'은 합죽선까지 온전해 보기만 해도 기품 있는 향풍(香風)이 무더위를 잠시 잊게 한다. 화제는 '월자운중타(月自雲中墮) 주종해저부(珠從海底浮) 월전(月田)'이다. 구름을 벗어난 달이 물 위에 비친 모습이 마치 바다 밑에서 떠오른 진주와 같다고 했다. 예술가는 모름지기 달을 양식으로 삼는다는 뜻도 장우성의 호 '월전'에 들어 있을 것 같다. 인장은 '장씨(張氏)', '나월(懶月)'이다.

오른쪽 끄트머리 인장 '다숙향온차자간(茶熟香溫且自看)'은 중국 명나라 이일화(1565-1635)의 시구이다. 잘 우러난 차향을 음미하며 그림을 감상하고 시를 짓는 서재인의 한가한 마음자리가 비춰진 이 구절은 청나라 전각가 황이(1744-1802)가 새겨 더욱 공감을 받았다. 장우성이 월전으로 서명하고 인장은 '게으를 나(懶)'의 나월 호인(號印)을 찍은 것은 이일화의 호가 죽라(竹懶)이기 때문이다. 장우성도 이일화처럼 서재생활을 하는 문인화가여서 그의 시서화인(詩書畵印)에는 이런 기호들이 들어 있다.[close]장우성은 경기도 여주에서 자라며 한학자인 할아버지에게 사서삼경을 배웠다. 어려서부터 글씨와 그림을 좋아했다. 1930년 19세 때 서울로 갔는데 아버지의 주선으로 위당 정인보(1893-1950)에게 한학을 배우며 성당 김돈희(1871-1936)의 상서회(尙書會)에서 서예를, 이당 김은호(1892-1979)의 화숙 낙청헌(絡靑軒)에서 그림을 배웠다. '낙청'은 청년세대로 전통미술이 잘 이어지라는 뜻으로 오세창이 지었고, 여기에서 배운 화가들의 모임 이름 '후소회'는 정인보가 지었다. 정인보는 '논어'의 회사후소(繪事後素)에서 따와 밝고 깨끗한 정신이 화가의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풀었다. 장우성은 후소회 핵심 멤버였다.

김은호에게 배워 화조화, 인물화 등 공필 채색화에 능했던 장우성은 광복 후 서예와 한학 실력을 바탕으로 화풍의 변화를 꾀해 문인화풍으로 새로워졌다. 필획 위주의 수묵담채와 직접 지은 한문 화제가 있는 고답적 화풍을 구사하면서도 남북분단, 환경오염, 세태풍자 등 사회의식이 드러난 현대 문인화를 그렸다.

'연꽃'은 노란 꽃술과 연밥이 보이는 분홍 연꽃 한 송이가 피어있고, 하엽록(荷葉綠)의 녹색 연잎이 커다랗게 펼쳐져 담채와 여백이 문기 있게 어울렸다. 연꽃은 불가의 꽃이기도 하고, 군자(君子)로 대접받는 유가의 꽃이기도 하다. 북송 때 학자 염계(濂溪) 주돈이가 연꽃을 군자로 비유한 글 '애련설(愛蓮說)'이 유명하기 때문이다. 소수서원 경렴정(景濂亭), 밀양 모렴당(慕濂堂)도 주돈이를 경모하는 뜻이며, 당연히 가까이 연못을 파고 연꽃을 심었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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