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238    업데이트: 24-03-26 13:33

매일신문

[이인숙의 옛 그림 예찬] 정선(1676-1759), ‘박연폭(朴淵瀑)’
아트코리아 | 조회 372
미술사 연구자


종이에 수묵, 119.5×52㎝, 개인 소장겸재 정선은 한국 산수화의 고전을 창작해 낸 조선 후기 대가이다. 우리 삶의 터전인 금수강산을 그림으로 그려냈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화풍을 하나의 양식으로 완성한 것이 정선의 진경산수이다. 금강산과 동해를 조망하는 관동팔경, 서울과 한강변의 명승, 지방관으로 벼슬살이를 했던 영남의 명소, 그에게 그림을 요청했던 분들로 인해 그려진 곳곳이 정선의 붓으로 남았다.

산수화는 서양의 풍경화와 달라서 아름다운 풍광을 이미지로 즐기려는 예술애호가의 감상물이라기보다 자연과 사회를 대하는 인생관과 처세관을 은유하는 시각적 매개체다. 산수화는 사유와 성찰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현실의 어떤 장소일 필요가 없었고 따라서 관념산수라고 했다. 만약 어떤 장소임을 표방한다면 그곳은 피속(避俗)을 실천한 고인일사(高人逸士)나 그러한 삶을 노래한 문학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회화는 동아시아 전통사회에서 철학과 역사와 문학이 융합된 예술이었다.[close]18세기 들어 우리나라의 실재하는 장소들이 산수화로 그려지게 된다.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지만, 산수자연을 관념으로서가 아니라 구체적 대상으로서 경험하려는 사고의 전환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명산대천을 찾아가는 탐승, 곧 여행이 적극적 문화행위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 땅 곳곳이 지리적 공간을 넘어 하나의 장소로서 새로운 가치를 부여받으며, 개인적 경험을 드러내며 의미화 되었다. 금강산과 동해가 먼저 그림으로 나타났다.

산수의 체험, 산하의 발견이 지식인 사회의 유행이 된 조선 후기에 그림을 좋아한 정지순(1723-1795)은 정선의 진경산수를 보면 그곳을 다녀온 사람에겐 낯익은 얼굴을 만난 듯 반가울 테고, 아직 못 가본 사람이라면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벌써 그곳으로 내달아 황급히 식량을 챙기고 말을 채찍질 할 것이라고 했다. 진경산수는 기억의 확인이자, 그곳으로 당장 떠나고 싶어지는 답사의 자료였다. 이 '겸재화서(謙齋畵序)'를 쓸 때 정지순은 25세, 정선은 72세였다. 그림을 매개로 청년과 노대가는 훈훈한 망년지교를 맺었다.

박연폭포는 높이가 37m 정도 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 그림은 아래 쪽 박연(朴淵)가에 서있는 인물의 키와 비교해 보면 폭포가 기이할 정도로 높다. 황진이, 화담 서경덕과 함께 송도삼절로 꼽힌 개성 박연폭포는 워낙 유명해 조선시대 그림도 여럿 전하지만 아무도 폭포수를 이렇게 과장하지 않았다.

눈으로든 귀로든 누구나 알고 있는 명소를 그린 이 그림을 앞에 놓고 이유자(已遊者)와 미유자(未游者)의 설왕설래가 만발했을 것 같다. 폭포 구경의 핵심은 물줄기의 속 시원한 쏟아짐이다. 박연폭포의 인상과 효용을 이백 퍼센트로 전해주는 정선의 진경(眞景)은 실경(實景)의 리얼리즘을 넘어선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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