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240    업데이트: 24-04-08 14:11

매일신문

[이인숙의 옛 그림 예찬] 조석진(1853-1920), ‘석왕사'(釋王寺)
아트코리아 | 조회 270
미술사 연구자


비단에 담채, 13.7×46㎝,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103년 전 조석진이 지금은 북한 땅인 설봉산 석왕사에 갔을 때 그린 아담한 부채그림 '석왕사'이다. 조석진은 안중식과 함께 19세기말 20세기초 전통화단의 쌍벽이었던 대가이다. 국권 피탈의 상황에서 서예와 전통회화 분야 젊은 세대를 길러낸 서화미술회 강습소의 중심적인 선생으로 공헌하였고, 민족미술가들의 결집인 서화협회 창립에 구심적 역할을 했다. 산수, 인물, 화조, 기명절지, 어해(魚蟹) 등 모든 장르의 그림을 다 잘 그렸으나 실경은 드물어 '석왕사'는 조석진의 알려진 유일한 실경산수화이다.

석왕사는 조선 태조 이성계가 꾼 꿈을 무학대사가 '왕이 될 꿈으로 풀이'해 준 곳에 지은 절이어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고 조선 왕실에서 지속적으로 후원했다. 일제 강점기 때 사진을 보면 기와지붕 전각들이 늘어선 대단한 규모의 도내 갑찰(甲刹)이었음을 알 수 있다. 육이오 때 미군의 폭격으로 주요 건물 대부분이 파괴되어 있던 것을 북한에서 근래 복원사업을 벌여 2019년 마무리했다고 한다.[close]'석왕사'로 제목을 쓰고 "무오(戊午) 유월(流月) 약의(畧擬) 진경(眞景) 위(爲) 우당인형(憂堂仁兄) 아상(雅賞) 소림(小琳) 조석진(趙錫晉)"이라고 하여 1918년 6월 우당 권동진(1861-1947)에게 그려주었음을 알 수 있다. 인장은 '석진(錫晉)'이다. 권동진은 삼일운동 민족대표 33인인 독립운동가로 같은 천도교인인 오세창과 친했고, 서예가이자 전각가인 오세창으로 인해 서화계 인사들과 가까웠다.

조석진과 안중식, 오세창, 이도영, 고희동 등은 삼일운동 바로 전해인 1918년 서화협회를 창립했고 이를 기념해 함께 금강산을 탐승했다. 천도교 손병희 교주를 비롯해 권동진, 최린 등도 이 여행에 동참했다. 이 때 동해안 외금강 위인 원산항 내륙 쪽에 위치한 석왕사에 갔고, 이를 계기로 조석진이 조선 건국의 상서가 처음 나타난 역사적 장소인 석왕사를 그려 권동진에게 선물한 것이다. 간결하게 요약한 현장감 있는 풍경과 무성한 녹음의 상쾌한 표현력이 싱싱해 대가의 필력임을 알 수 있다.

무학대사가 해몽한 이성계의 꿈은 1392년 7월 17일 그가 개경 수창궁에서 왕위에 오름으로서 실현되었다. 조선왕조 건국일인 이 날짜에 맞추어 73년 전인 1948년 민주주의를 기본으로 한 대한민국 헌법이 공포되었고 제헌절로 기념하게 되었다. 법정공휴일은 아니지만 우리역사와 헌법의 의미를 생각해보는 제헌절 되시기를…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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