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242    업데이트: 24-04-23 14:09

매일신문

[이인숙의 옛 그림 예찬]이응노(1904-1989), ‘재건 현장’
아트코리아 | 조회 164
미술사 연구자



종이에 담채, 43×52㎝, 개인 소장


한국전쟁이 끝난 후 고암(顧菴) 이응노가 전쟁터였던 서울이 재건되는 현장을 그렸다. 폭격으로 허물어진 부분을 복구하는 건설 노동자들의 동작이 분주하다. 모두 14명이 나온다. 목재를 나르거나, 등짐을 지고 사다리를 오르거나, 대형 망치 오함마로 잔해를 부숴 정리하거나, 못질을 하거나, 감독하거나 하고 있다. 몸으로 대부분의 일을 하던 시절이다. 고층의 붉은 벽돌건물인 것으로 보아 일제 때 지어진 관공서이거나 주요 건물일 것이다.
이 '재건 현장'뿐 아니라 이응노는 자신의 눈에 들어오는 주변 광경을 스케치풍으로 그린 그림을 많이 남겼다. 서예와 사군자로 입문한 이응노는 스무 살이던 1923년 조선미술전람회에 묵죽으로 입선하며 화가로서의 이력을 시작했다. '재건 현장'을 보며 그가 출발한 지점과 생애 마지막 시기에 도달한 지점을 함께 생각해 보면 훌륭한 작가란 현실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작품 속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걸 들여놓으며 확장해 가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이응노는 창작에 대한 왕성한 열정과 실험정신을 자신의 전 생애를 통해 보여주었다. 묵죽도 심화시켰지만 그의 세계는 대나무를 넘어 뻗어나갔고, 붓과 먹을 다루는 실력만큼은 피카소도 나를 따라오지 못한다고 자부했지만 지필묵을 넘어 주변의 가능한 재료를 다양하게 활용했으며, 조국을 사랑했지만 그의 발걸음은 더 넓은 무대인 유럽으로 향했다.
이응노는 1958년 55세의 나이로 한국을 떠났고 파리에 정착했다. 냉전시대 정치 공작의 피해를 입으면서도 한계치에 이를 때까지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았다.

'재건 현장'은 휴전협정 후 서울을 보여주는 한 폭의 역사화다. 이응노의 눈은 현실을 떠나지 않았고 그의 정신은 주변을 간과하지 않았다. 이런 예술정신이 있었기에 그는 묵죽이 담아냈던 과거 세기의 표현성을 20세기라는 달라진 환경에서 재료와 형식과 의미의 유효함을 여전히 가진 말년의 군상(people) 시리즈로 실현할 수 있었다. 묵죽의 죽엽 한 잎 한 잎을 환골탈태시킨 것이 군상의 한 명 한 명의 도약하는 사람들이다.
그의 눈과 정신이 현실의 바깥을 공허하게 배회하지 않았고, 그의 손이 쉬지 않으며 실험을 계속했기에 시작과 마침을 하나로 꿴 일이관지(一以貫之)가 가능했다. '재건 현장'은 그 과정 속에 있는 작품이다. 종이와 먹과 붓 한 자루를 고답적 형식미에 머물지 않을 수 있게 한 화가 이응노의 현실과 주변에 대한 관찰과 애정을 보여준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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