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240    업데이트: 24-04-08 14:11

매일신문

[이인숙의 옛 그림 예찬]김기창(1913-2001), ‘부산 천막교실’
아트코리아 | 조회 201
미술사 연구자



종이에 담채, 78×90㎝, 개인 소장

그림의 오른쪽 아래에 '1952년 부산 운보'라고 써 놓았다. 김기창이 6·25전쟁으로 부산에 피란해 있던 시절 그린 '부산 천막교실'이다. 커다란 국방색 군용 천막을 긴 나무 작대기로 얼기설기 받쳐 햇빛을 가렸다. 천막교실 안에는 칠판과 선생님만 있을 뿐 교탁이나 책상, 의자도 없다. 학생들은 맨 손으로 맨 땅에 앉아 공부한다. 가건물을 지을 여유도 없던 피란 생활 중에도 아이들 공부를 쉬게 하지 않았던 한민족의 대단한 교육열을 실감나게 보여주는 그림이다. 부모들은 어떻게든 내 자식에게 공부를 시키려고 했다.

앞쪽 교실은 남학생반이고 뒤쪽 교실은 여학생반이다. 69년 전 김기창의 눈에 들어왔던 광경임을 감안하고 보면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어 보인다. 천막 위로 멀리 원경에는 산등성이 꼭대기까지 빼곡히 들어선 지붕들이 달동네를 이루었다. 피란민들이 몰려들며 산 위로 계속 올라간 판잣집들이다. 마치 육이오전쟁 후방 기록화를 보는 느낌이다.[close]김기창이 이 그림을 그린 1952년 여름은 1·4후퇴로 빼앗겼던 서울을 다시 탈환한 지도 일 년이 넘었을 때다. 그러나 삼팔선 일대 전방에서는 총성과 포격이 그치지 않았다. 지리한 전쟁이 언제 끝날지 기약 없는 상황이었다. 정부가 옮겨갔던 임시수도 부산을 비롯해 대구, 마산 등지에서는 나름의 전시(戰時) 문화가 생겨나 너나없이 가난하고 고달픈 피란살이 중에서도 단체전과 개인전이 다방을 전시장 삼아 열렸다. 김기창을 비롯해 고희동, 김은호, 변관식, 노수현, 장우성, 배렴, 김영기, 이유태 등의 동양화가들이 부산으로 내려가 있었고, 대구에는 오세창, 이상범, 허백련 등이 피란해 있었다.

연로했던 위창 오세창은 1953년 90세를 일기로 중구 대봉동 31번지에서 작고해 사회장으로 모셔졌다. 청전 이상범(1897-1972)은 처음에 부산으로 내려갔다가 여름 무렵 연고가 있는 대구로 옮겨와 서울로 돌아갈 때까지 4년을 대구에 살았다. 피란 이듬해 9월 이상범은 대구미국공보원에서 '효종(曉鐘)' 등 25점으로 전시회를 열며 전쟁 통에도 자신의 양식을 차분히 완성해 가고 있었다. 개인전을 연 이유는 생활고 때문이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피란 미술인들의 활동은 지역 문화의 활력소가 되었고, 지역의 작가들이 자극받는 계기가 되었다. 죽농 서동균이 1953년 시도한 실경산수 작품들은 이상범의 영향이었을 것이다.

6·25라는 극한 상황에서도 교육이 멈추지 않았고 예술도 멈추지 않았다. 8살 때 청각에 장애가 생겨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했던 김기창이었기에 천막학교가 더 눈에 들어왔을지 모르겠다.

미술사 연구자
덧글 0 개
덧글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