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240    업데이트: 24-04-08 14:11

매일신문

[이인숙의 옛 그림 예찬]박래현(1920-1976), ‘여인’
아트코리아 | 조회 146

종이에 채색, 94.4×80.6㎝,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한복을 입고 신식 머리 모양을 한 젊은 여성이 나무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을 어깨 뒤 쪽에서 비스듬히 잡았다. 왼손으로 턱과 뺨을 괸 채 수그린 뒷모습은 이 여성이 뭔가 착잡한 상념에 잠겨 있음을 암시한다. 보슬보슬한 감촉이 손끝에 만져질 듯 곱고 정결한 색채 표현이 감탄스러운 가운데 머리카락의 검은색조차 화사하다. 촉각적인 은은한 색조, 간결한 형태감과 여백의 설정이 화면 속 인물에게 몰입하게 한다. 팔꿈치 아래로 보이는 오른손에는 봉숭아꽃물로 손톱을 물들인 엄지와 검지로 연노란 종이학을 쥐고 있다. 이 그림의 주제는 종이학으로 상징되는 어떤 소망을 고민하는 한 한국여성이다. '여인'은 1942년 박래현이 일본 도쿄의 여자미술전문학교에 재학할 때 작품이다. 스물세 살 박래현 자신의 모습일 것 같다.

'여인'과 함께 박래현의 유학시절 그림 중에는 중국소녀, 일본소녀 등 여성 인물상이 있어 같은 학교를 다닌 네 살 아래 천경자가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등 가족을 모델로 삼은 것과 대비된다. 20대의 박래현이 한복, 기모노, 치파오 등 전통복식의 한중일 여성을 모두 그린 것은 그녀가 일찍이 한반도를 벗어나는 세계시민의식을 가졌음을 말해준다.[close]1945년 4월 일본에서 귀국한 박래현은 이듬해 첫 개인전을 열었다. 화단의 중진인 운보 김기창(1913-2001)은 "박 양은 색채 감각이 풍부한 작가 중 한 사람이며 열과 성을 지닌 작가"라고 호평했는데 이 후배 화가와는 2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 김기창은 언어 표현에 장애가 있는 청각장애인이었으나 이들은 수년간 필담(筆談) 연애 끝에 결혼했다. 이후 박래현은 화가로서, 화가의 아내로서, 네 자녀의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모두 수행했다. 유명화가를 남편으로 둔 화가 박래현은 '같은 길을 가는 괴로움' 속에서 김기창이라는 거인에게 압도되지 않기 위해 '무서운 대결'을 해야 했다고 했다. 예술가이자 주부의 역할을 병행한 박래현의 뒤에는 그녀가 결혼하던 해 사별한 어머니가 있어 자녀 양육과 가사를 도와주었다. 박래현과 쌍벽을 이룬 천경자에게도 일찍 사별한 어머니라는 조력자가 있었던 점은 같았다.

20대부터 꿈꾸었던 박래현의 미국 유학은 50세의 나이인 1969년 큰딸의 유학과 함께 실현되어 뉴욕에서 판화 공부를 시작하게 된다. 박래현은 딸이 결혼하는 1973년까지 미국에 머물렀다. 김기창은 "실컷 공부하고 지혜의 보물을 가지고 오면 나도 그 지혜의 보물을 골라 갖기로 하지"라고 하며 아내의 공부를 지원해 주었다. 2020년 '탄생 100주년 기념: 박래현, 삼중통역자'전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렸다. 누구나 자신의 어려움을 겹겹이 보유하고 있지만 '여인'의 종이학에 담았던 20대 박래현의 기원은 이루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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