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238    업데이트: 24-03-26 13:33

매일신문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순조시대 화원, ‘왕세자입학도첩’ 중 ‘수하도'(受賀圖)
아트코리아 | 조회 261
미술사 연구자


종이에 채색, 34.1×46.5㎝, 고려대학교도서관 소장

'왕세자입학도첩' 6점 중 마지막 그림인 '수하도'는 입학례를 무사히 마친 왕세자가 2품 이상 문무 관료와 종친의 축하인사를 받는 장면이다. 아들의 입학을 대견해 하며 열심히 공부해 훌륭한 후계자가 되기를 당부하고 관련자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왕의 치사(致詞)가 대치사관(代致詞官)에 의해 낭독되고 왕세자는 이 행사를 위해 애쓴 세자궁 소속 관원과 성균관 관계자에게 포상을 내린다.

왕세자 교육은 국가의 운명과 직결되는 문제였다. 왕은 권력의 정점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존재인데다 즉위하면 특별한 결함이 없는 한 평생 계속하는 종신직이었으므로 어떤 인물이 국왕이 되느냐에 따라 국운이 좌우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왕세자에 대한 존중이 왕 다음으로 중요해 왕세자 전용의 어휘가 마련되어 있었다. 호칭은 전하 대신 저하로, 덕망이 있음을 성덕(聖德) 대신 예덕(睿德)으로, 초상화는 어진 대신 예진으로, 필적은 어필 대신 예필 등으로 '슬기로울 예(睿)'자를 붙였다. 왕세자를 일컫는 말도 동궁, 춘궁, 이극(貳極), 저군(儲君), 중화(重華) 등 많다.[close]효명세자는 입학례를 치른 2년 후인 11세 때 조만영의 딸과 가례를 올렸고 1827년 19세 때 부왕 순조의 명으로 공식적으로 국정을 돌보는 대리청정을 시작해 문예를 숭상하고 백성을 위하는 정치를 행하려 노력했다. 대리청정 3년 만에 22세의 나이로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했지만 이 기간 동안 정치, 문학, 회화, 궁중연향과 정재(呈才) 분야에서 이룩한 효명세자의 업적은 정조를 잇는 또 한 명의 문예군주를 볼 수 있었을지 모른다는 아쉬움을 불러일으킨다. 중요한 회화사의 업적은 효명세자의 대리청정 기간 중에 제작된 창덕궁과 창경궁을 그린 '동궐도'이다. 천(天), 지(地), 인(人) 3본이 제작된 '동궐도'는 그 중 두 본이 고려대학교박물관과 동아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펼치면 가로 3m 세로 6m에 달하는 거작으로 모두 국보로 지정되었다.

'동궐도'도, '왕세자입학도첩'도 순조시대 화원이 그렸다. 화원들은 주요업무 중 하나였던 지도와 기록화를 그리는 독특한 양식을 축적했다. '수하도'는 행사의 배경과 내용, 참여 인원 등이 한 눈에 파악된다. 건물은 자를 대고 긋는 계화법(界畵法)의 직선으로 엄숙한 분위기를 주었고 인물은 그룹별로 정연하게 동질화시켰다. 각각의 대상을 주시한 시점(視點)은 앞에서 본 것, 뒤에서 본 것, 오른쪽에서 본 것, 왼쪽에서 본 것, 내려다 본 것, 올려다 본 것 등을 필요에 따라 섞어 전체 광경을 알기 쉽게 했다. 화원들의 오랜 경험의 결과인 이런 복합 시점은 행사의 시각적 기록물이라는 이 그림의 목적에 잘 들어맞는다. 화가의 입장이 되어 통일과 반복 속에서도 변화와 차이를 주려 했던 고심을 찾아보는 것도 기록화를 보는 재미의 하나이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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