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240    업데이트: 24-04-08 14:11

매일신문

[이인숙의 옛 그림 예찬]순조시대 화원, ‘왕세자입학도첩’ 중 ‘수폐도’(脩幣圖)
아트코리아 | 조회 145
미술사 연구자


1817년(순조 17년), 종이에 채색, 34.1×46.5㎝, 고려대학교도서관 소장

효명세자가 성균관에 입학하는 행사를 그린 '왕세자입학도첩' 6점 중 왕세자가 스승인 박사(博士)에게 입학을 허락받고 수업료라고 할 폐백을 드리는 '수폐도'이다. 박사는 대체로 대제학이 맡는데 당시는 세자시강원 우빈객(右賓客) 남공철(1760-1840)이었다. 그림 왼쪽의 차일을 친 붉은 기둥의 명륜당에서 벌어졌던 일이다. 처마 아래 오른쪽에 붉은 공복(公服)을 입은 박사가 서 있고 성균관 유생 셋이 왕세자를 대신해 술과 마른고기, 옷감을 드리고 있다. 왕세자는 세자시강원 관료들과 함께 절을 하고 있는데 노란 직사각형으로 자리만 그려져 있다. 왕세자가 스승에게 드린 예물은 백비(帛篚, 모시 3필), 주호(酒壺, 술 2말), 수안(脩案, 마른고기 5정) 등으로 기록에 나온다.

성균관에 들어설 때부터 왕세자는 왕위 계승 예비자가 아니라 학생의 신분이기 때문에 출궁할 때의 곤룡포와 익선관 대신 도포를 입고 유건을 쓴 청금복(靑衿服) 차림이었다. 이 행사에 참여하고 있는 성균관 유생들과 같은 학생복이다. 세자를 호위하는 경호부대인 세자익위사의 무관과 의장대는 명륜당 담 밖에서 대기하며 왕세자의 여(輿)와 간이천막인 편차(便次)를 둘러싸고 있다. 편차는 명륜당 아래에 하나 더 설치되어 있는데 왕세자가 옷을 갈아입기도 하고 절차의 사이사이에 들어가 쉬면서 기다리는 장소의 기능을 한다. 담 밖의 편차에서 명륜당까지 왕세자의 동선이 노란 선으로 표시되어 있다. 왕세자는 서쪽 계단으로 오르내렸고 스승인 박사는 격이 높은 동쪽 계단을 사용해 이때도 군신이 아닌 사제의 예가 적용되었다.[close]'수폐도' 앞의 그림은 세자가 박사에게 가르침을 청하며 왕복하는 '왕복도'이다. 박사가 "덕이 부족하여 왕세자를 욕되게 할 수 없습니다."라고 사양하기 때문에 왕세자는 다시 스승이 되어 주기를 청하며 두 번 왕복한 후 세 번째에 박사가 "사양해도 명(命)을 받지 못했으니, 어찌 감히 명(命)을 받들지 않겠습니까."라며 비로소 입학을 허락하게 된다. '수폐도' 뒤의 그림은 박사와 왕세자가 명륜당 안으로 들어가 '소학(小學)'을 교재로 첫 수업이자 마지막 수업을 하는 '입학도'이다. 학생인 왕세자는 박사와 달리 책상도 없이 바닥에 책을 놓은 채 수업을 받는다.

왕실은 공자와 유학이라는 성인과 학문의 진리 앞에 겸손했다. '왕세자입학도첩'을 보면 조선이 왕조국가이기 이전에 유학국가였다는 사실이 실감난다. 왕과 왕세자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하나의 학문 체계이자 문화적 의식으로서 유학은 여전히 쓰임이 계속되고 있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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