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238    업데이트: 24-03-26 13:33

매일신문

[이인숙의 옛 그림 예찬]장욱진(1917-1990), ‘1991년 새해 그림’
아트코리아 | 조회 205
미술사 연구자


종이에 수묵담채, 크기미상, 개인 소장

장욱진이 생애 마지막으로 그린 절필작이다. 장욱진은 1990년 12월 27일 74세로 작고했고 이 그림은 1991년 1월 5일자 '동아일보' 새해 축화(祝畵)로 실렸다. 화선지에 먹으로 그렸고 "신미(辛未) 원단(元旦) 욱(旭)"으로 서명했다. 장욱진의 욱은 '돋는 해 욱(旭)'이다. 새해맞이 그림에 빠질 수 없는 붉은 해가 '욱'자 아래 있고 그 옆에 산봉우리 두 개가 있다. 해가 아래에 있고 산이 이렇게 작게 거꾸로 그려진 것은 날개를 한껏 펼친 새가 하늘 높이 날며 아래로 내려다 본 세상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새의 위치가 되어 종이를 거꾸로 돌려놓고 붓질을 했을 것 같다.

새는 마침내 생의 과업을 완수하고 창공을 날아 하늘로 간 그 자신일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2년, 서울대학교 교수로 6년 직장을 가졌던 외에는 평생 돈 되는 일을 한 일이 없이 그림에 몰입한 삶이었다. 나이 육십에 이르러 그의 그림은 돈이 되기 시작했다. 전업의 화가로서 "나는 붓을 놓아본 일이 없다"고 했던 장욱진의 유화는 전작(全作) 도록인 '장욱진 카탈로그 레조네 유화'(2001년)에 720점이 실려 있다. 유화 외의 먹그림, 매직화, 수채화, 판화, 도화(陶畵) 등도 상당히 있지만 그의 소재는 몇 안 된다. 이 그림의 새, 산, 해 등을 평생 그렸다. 시골에서 주로 살았던 그의 눈에 늘 보이는 새이고 산이고 해였다. 그는 주변에서 보이는 것을 그렸지만 그 형상은 현실과 자연의 실체와 맥락에서 벗어나 있다. 그의 생각과 정신이 세상과 멀리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거주한 곳은 무형의 세계인 예술의 영토였고 화면이라는 사각형 구조물 속이었다.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황당무계한 세계다.[close]많이 그리지 않았고 작은 그림을 그렸던 그는 "나는 심플하다. 이 말은 항상 내가 되풀이 해서 내세우고 있는 나의 단골 말 가운데 한마디지만 또 한 번 이 말을 큰소리로 외쳐보고 싶다. 나는 깨끗이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라고 했다. 그의 심플(simple)은 욕망을 덜어내는 구도(求道)의 길이고 흔적을 덜 남기고 살기 위함이다. 의식주를 비롯해 인간관계까지 덜어냈던 그에게 새는 세계와 고립되어 자족하는 화가인 자신이다.

그의 주문(呪文)인 '심플'은 조형적으로는 간결미로 정제된 모더니즘의 심미성이다. 장욱진의 회화는 극도로 예민하게 단도직입으로 군더더기 없이 구성된다는 점에서 '선화(禪畵)'이고, 회화적 관습이나 유파와 무관하게 예외적으로 자신의 조형을 창안해냈다는 점에서 '문인화(文人畵)'이며, 길상의 뜻과 해학의 맛이 있는 쉽고 즐거운 그림이라는 점에서 '민화(民畵)'이며, 일상에서 추출한 영원이며 미(美) 속에 선(善)이 있다는 점에서 '성화(聖畵)'이다. 정성(定性)적으로 평가하자면 민족적인 형상을 창조했다는 점에서 한국사람이 아니면 그릴 수 없는 그림, '한국화(韓國畵)'라고 할 것이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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