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9    업데이트: 21-10-01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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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이혜인 평론<이미애>
이혜인 | 조회 1,621

자수문양을 통한 현대적 회화로의 변용- 이혜인의 “즐거운 날”

 

우리의 전통자수는 우리 민족 고유의 정서를 문양에 담아 수놓은 민예품이자 민화와 같은 미학적 토대 위에서 보다 장식성이 강화된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작가 이혜인은 이러한 전통 자수문양을 회화의 한 요소로 적용하여 작품으로 승화시켰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그녀가 작품 속에서 추구해온 전통적 상징물은 하나같이 민족 고유의 문화적 실체를 그대로 반영하기 때문이다.

 

전통문양의 경우 단순한 사물의 표현이라는 장식적인 차원을 넘어 오랜 세월을 두고 전래되어 온 우리 민족 내면의 풍부한 상징성을 보여준다. 즉, 전통문양은 처음부터 현대의 문양처럼 감상이나 장식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전통사회의 천재지변에 대한 외경심과 인간의 생로병사에 대한 염원 등 일종의 샤머니즘적인 신앙이 배어 있다.

 

인간의 탄생에 대한 기쁨과 기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의식하며 가문의 번성과 더불어 자자손손 부귀영화를 누리도록 염원하는 벽사수복(辟邪壽福)의 상징이 내포되어 있는 것도 특이하다. 바로 그러한 의미가 작가 이혜인의 작품 속에 그대로 녹아들어 현대적인 미감에 따라 다듬어지고 변형되어 완성되기 때문이다.

 

그녀의 작품에 투영된 자수문양은 민예적 조형성과 풍부한 상징성으로 전통적인 미의식의 재발견이라는 점에서 볼 때 그 효용성이 다양하기 그지없다.

 

글로벌시대에 걸맞게 전통과 현대가 퓨전화되면서 뒤섞여 가고 있는 문화환경에서 자칫 소멸되거나 변질되기 쉬운 전통적 미감을 복원하는 작업이란 결코 쉽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전통 자수문양이 갖는 풍부한 장식성과 상징성은 한국적 회화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전통 자수문양을 회화적으로 변용하여 자신의 작품에 표현하고자 하는 그녀의 노력은 돋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수 보자기며, 베갯모 등은 누구나 어릴 때부터 수없이 보고 사용해 왔던 단순한 물건에 불과하지만 세월이 흘러 옛것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통할 때 우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본능적으로 떠오르게 마련이다.

작가 이혜인은 그런 아련한 추억과 그리움을 매개로 전통적인 자수문양을 통해 삶에 대한 궤적을 화면 속에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우연한 기회에 작가 이혜인의 작업실을 방문했을 때 필자는 세월을 거슬러 흡사 조선조의 사대부 집 규방에 들어간 느낌을 받았다. 그곳은, 옛것을 모티브로 하여 그녀만의 창조적인 욕구를 표출하고, 붓을 바늘 삼아 즐거운 날의 기억을 풀어내는 공간이었다.

 

그래서 작가 이혜인이 그림을 그리면서 느꼈던 아름답고 소박한 감정 만큼이나 그녀의 작품을 대하는 모든 이들도 함께 즐길 수 있는 “즐거운 날”이 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2012. 4

 

이미애 (수성아트피아 전시기획팀장·미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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